"너는 MBTI 앞자리가 E라서 우리 같은 I 성향의 사람들이 가진 낯가림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얼마 전 회사 동료들이 나를 보며 한 말이야.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지. 회사에서의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외향형에 가까우니까.
그런데 어제 모임에서 정반대의 얘기를 들었어.
"너랑 나처럼 MBIT 앞자리가 I인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 만나 수다 떠는 거 별로 내켜하지 않잖아."
사람들 사이에서 별말 없이 웃기만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지인이 한 말이었지. 그 말을 듣고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는 지인의 말처럼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었으니까.
며칠 사이에 상반된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예전에 했던 무서운 상상이 생각나더라. 어떤 때에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어 보이는 외향형이다가 또 다른 때에는 말주변 없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향형 사람으로 보이는 게 영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때 나는 스스로를 다중인격자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나 혹시...맨날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은 점점 더 커져 하나의 생각에 이르렀고 나는 거기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어.
특히 정 반대의 성향이 내 안에 있다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졌고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인격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지.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말이야.
그런 생각이 나를 점점 더 우울하게 만들었을 때 즈음,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주더라. 우리의 모습을 딱 한 가지로 정할 수 없다고.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게 오히려 건강한 것이고 우리가 맡고 있는 역할이 다양한 만큼 자연스럽게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라고 말이야.
쫄보야, 넌 요즘 어때? 집에서의 네 모습과 회사에서의 네 모습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집에서는 스우파를 보면서 춤을 따라 하는 끼있는 사람이다가도 회사에서는 말없이 자기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이지 않아? 그러다가 엄마한테 전화라도 오면 그간 못했던 투정을 다 쏟아내는 어리광 많은 딸내미일 수 있고 엄마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는 낯설어 괜한 눈치 보는 소심한 누구 엄마로 불리고 있을지 모르지.
내가 짐작하기만 해도 너한테 이렇게 많은 역할이 있는데, 그 모든 상황을 두고 너를 딱 하나로 꼬집어 표현한다는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게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어. 이런저런 역할 속에서 달라지는 내 모습에 익숙해지려고 해. 회사에서는 활발한 사람이었다가 퇴근하고서는 조용한 사람이려고 하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먼저 말 거는 외향적인 사람이다가 단골 카페에 갈 때는 주문 이외 일절 말이 없는 내향적인 사람이려고 해. 내가 속한 상황에 따라서, 그 역할에 따라서 행동하려고 해.
그러다 보니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지 다중인격은 아닌 것 같더라. 게다가 요즘은 다양한 역할 속에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되어보는 것에 재미도 느껴.
쫄보야, 오늘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만약 네가 진짜 네 모습이 뭔지 헷갈린다면, 진짜 네 모습은 하나가 아니란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넓은 스펙트럼 안에 다양한 모습의 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그리고 네가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될수록 너의 진짜 모습 역시 더 다양해질 거란 것도 잊지 마.
그럼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