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반 친구와 함께 도시락을 먹는데 갑자기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어.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한 뒤 며칠간 대화를 안 하고 계셔서 자기가 너무 불편하다는 말이었어.
“글쎄 우리 아빠가 갑자기 엄마한테 더 이상 나한테 기대지 말라고 한 거야. 그래서 엄마가 설거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울었어. 그리고는 두 분이 대화를 안 해. “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의아해서 물었지.
“너네 아빠 갑자기 왜 그러신 거야?”
“아빠가 얼마 전에 수술하셨는데 그 이후로 자신이 먼저 죽으면 어쩌나 생각을 많이 하시나 봐. 엄마는 평생 아빠 뒷바라지만 했는데 갑자기 기대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까 너무 서운하대.”
친구의 말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친구의 아빠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었어.
쫄보야, 오늘 이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말이야. 의존적인 습관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야.
이어서 얘기하자면, 친구네 부모님 부부싸움과 비슷한 일이 내게도 일어났지.
당시에 나는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어. 6개월 동안 누구와 말도 안 하고 공부만 하려니 답답하고 외롭더라. 마침 동기가 나와 같은 고시원에서 시험 전까지 살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 얼마나 신나던지.
그 이후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어. 말동무가 생기니까 너무 좋았지. 그래서 나는 하루에 몇 번씩 안부를 물으면서 지냈었어.
근데 어느 날, 동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네가 나한테 너무 기대는 거 같아.”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 하루에 두 번 정도 오가면서 대화하는 게 전부인데 그걸 가지고 기댄다고 하니까. 그래서 나는 동기에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며 당분간 관심을 끊었어.
그게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거의 잊었던 기억인데 갑자기 그때 일이 떠올랐어. 왜냐면 최근에 내가 또 똑같은 얘길 들었거든.
누군가에게 의존하려들지 말라는 말.
처음엔 나는 아니라고 부인했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바로 인디펜던트(independent)인데 그럴 리 없잖아?
근데 계속 속이 뜨끔한고 뭔가 들킨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더라.
처음에는 엄마였던 거 같아. 어떤 행동을 할지 물어보고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을 선택해 잘했다는 칭찬을 받으면 좋았거든. 그러면서 거의 20년 이상을 엄마에게 기대며 살았던 거 같아.
그러다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나를 아껴주는 교수님에게 의존했고 졸업한 뒤에는 남자친구에게 기댔더라. 이별 뒤에는 친한 지인에게 의존하고 그런 패턴이 상대만 바뀌었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어.
돌아보면 어떤 선택을 할 때 나 스스로 답을 찾기보단 너무나 쉽게 상대에게 물었던 거 같아. 무엇을 할 때마다 허락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걸 아니? 심지어 내가 생각한 답과 상대의 답이 다를 때도 상대가 아닌 내 선택을 의심했던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반대로 만약 누군가 나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면 내 기분이 어떨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나에게 기댄다면, 동생들이 내게 의존한다면, 어떤 친구가 나에게 계속 자신이 선택할 일을 물어본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니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알겠더라.
그 상상 만으로 앞으로는 남에게 의존하며 부담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어.
너 혹시 의존하지 않고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니? 나한테는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는 말인 거 같아.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며 사는 게 주체적인 삶인 거 같아.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친구 부모님의 말다툼과 고시원에서 친구가 했던 말, 최근에 들었던 조언까지 모두 한결같이 알려주고 있었어. 이제는 그만 묻고 네가 원하는 결정을 하라고 말이야
오늘의 글을 마치며 앞으로 나는 의존적인 습관에서 벗어나 좀 더 나다운 결정을 하려고 해. 그렇게 나 자신을 의지하면서 살려고. 너의 응원이 많이 필요하단다. 쫄보야.
그리고 너 역시도 그렇게 살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