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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핑크 보이의 짝짝이 양말

오늘(11월 17일)은 겸이가 짝짝이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는 날이다. 며칠 전 학교에서  Odd Socks Day 행사에 대한 안내문을 받고 집에 있는 양말을 다 뒤졌지만 별 뾰족한게 나올 리 없었다. 평소에 등교할 때는 교복에 검정색 운동화나 구두, 흰색이나 검정 양말을 신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색깔있는 양말을 산 적도 없고 나도 더운 나라에 온다고 양말을 한 두켤레 밖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  색깔이 화려하고 눈에 잘 띄는 알록달록한 목이 긴 양말이 필요한데,  색깔이 있는 거라곤 한국에서 가져온 목이 별로 길지 않은 파란색 캐릭터 양말이 세켤레 있었다.      

겸이에게 마트에 재밌는 양말이 있나 사러가자고 했더니      

 " 엄마, 그렇다고 무슨 양말을 새로 사, 그냥 있는 양말 신고 갈래."     

 " 눈에 띄는 재밌는 양말이 없잖아, 뭐 살만한 게 있나 한 번 가보자"     

" 아, 나 그냥 축구양말 짝짝이로 신고 가면 안돼? 까만색하고 파랑색 있잖아."     

결국 한국에서 혹시나 해서 두 개 챙겨왔던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등교했다.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할 5링깃도 함께 챙겨 보냈다.  이번 행사는 학교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친절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주간 교육의 일환으로 온 학교 구성원이 짝짝이 양말을 신고 등교를 하는 이벤트 이며, 각자 5링깃을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를 하는 행사를 한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학교에서 심심찮게 이런 행사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수학 주간의 일환으로 어느 금요일에 전교생이 락스타 복장을 하고 등교하라는 안내문이 왔었다. 안내문을 읽어봐도 짧은 영어실력으로 도대체 락스타와 수학이 무슨 연관이 있는건지 모르겠으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머리를 컬러 스프레이를 이용해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찢어진 청바지나 썬그라스를 씌워 진짜 락스타같은 연출을 해서 보낸 아이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겸이는 한국에서 들어오는 날 입고 한번도 안 입은 7부 청바지를 입혀보니 그동안 몸이 커졌는지 엉덩이가 꽉 끼어 간신히 들어간다. 다행이 엉덩이를 덮는 민소매 티셔츠가 있어서 위에 그걸 입히고 빨간색 손수건으로 머리 밴드를 하고 내 썬그라스를 씌워 보냈다. 너무나 평범한거 같아서 아이에게 청바지 좀 찢어서 입어볼까? 했더니 질색을 한다. 의외로 보수적이다.      


 그보다 좀 더 전에 핑크데이 행사도 있었다. 유방암환자를 돕는 이벤트였는데, 역시 기부금 5링깃과 함께 전교생이 핑크색 옷을 입고 등교하라는 메일이 왔다. 이곳에 와서 핑크를 좋아하게 된 겸이는 아침에 신이 나서  핑크 티셔츠를 입고 등교를 했다.  그날 학교에서 아이들이 재활용품을 가지고 만든 작품을 전시한다고 오후에 잠깐  학부모를 초대하는 시간이 있어서 학교에 갔었다.  교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아이들이 핑크 옷을 입고 등교를 해서 온통 학교가 핑크 물결이었다. 학생들도 핑크색 옷을 입고 왔지만 특이한 것은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전 교직원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날 승겸이의 담임인 미스 샤티샤는 핑크색 인도 펀잡 드레스를 입고 왔는데, 평소에 늘 티셔츠에 면 바지를 입고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이미지의 겸이에겐 무서운 담임인 샤티샤 선생님이 그렇게 예쁜 모습은 처음 봤다.     

  

 그 외에도 인터내셔널 데이엔 각 나라의 전통 복장을 입고 등교를 하는 일이 잦아서 비싼 배송료를 내고 한국에서 배송받은 한복을 입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의 큰 명절인 하리라야엔 모든 아이들이 말레이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등교를 하고 인도인이 많은 페낭에선 인도의 명절에도 인도 전통옷을 입고 등교하는 날도 있다.  할로윈 행사 때 학교에 가보니 가장 요란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유령신부 복장을 한 세컨더리 교장샘을 비롯한 얼굴을 온통 각종 귀신들로 분장한 선생님들이었다.      

 늘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던 아이들에게 가끔 이런 행사를 통해 남을 돕는 일에 참여하는 정신을 배우고, 친구나 선생님들의 자신을 표현하는 재미있고 다양한 방법과 아이디어를 배우는 것도 살아있는 창의성 교육의 일환 인 것 같아 좋아 보였다.   이렇게 또 한 학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시간이 쏜살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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