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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짧은 여행

페낭에서 가까운 타이핑과 이포 여행기

 지난 주 일주일 간의 학교 텀브레이크 기간 동안 페락 주의 이포와 타이핑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일년을 세 학기로 나누어서 운영하는 영국 학제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시작된 두번 째 텀이 4월 7일에 끝나고 3학기 시작 전에 일주일 간의 짧은 방학이다. 겸이 친구네 몇 명은 가까운 태국 코리뻬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어떤 집은 금요일 저녁에 한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우리는 일년마다 해야하는 비자 갱신을 위해 여권이 이민국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디로 여행을 갈 생각이 없기도 했지만 가고 싶어도 여권이 없으면 배나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학 첫날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와 씨름을 하자니 일주일을 이대로 보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어딘가로 떠나고 같은 아파트에 남은 친구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가까운 곳에 하루라도 다녀오자는 마음이 통해서 급하게 하루 이포에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로 한 목요일 아침에 마침 비자 발급이 완료되었으니 여권을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와서 출발 전에 우선 학교에 들러 여권을 찾아왔다. 이렇게 또 일년을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발급되었다.      

 타이핑은 페낭에서 한 시간 쯤 차를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유명한 주석 산지여서 말레이시아 최초의 기차역이 세워졌던 곳이라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타이핑 시내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작은 지방 소도시로 여행을 떠났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소박하고 조용한 풍경이 나타나서 여행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들게 했다.      


  사실 타이핑에 들르고 싶었던 이유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본 호수 사진 때문이었다. 족히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큰 나무들이 호숫가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어떤 나무들은 아예 가지를 땅에 대고 누워 있는 듯한 사진들도 보였다.  가서 실제로 보니 영국의 어느 공원처럼 드넓고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서 마음이 평화로와 지는, 말레이시아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호숫가라도 산책은 아침이 아니라면 이 더운 나라에서 사진으로만 낭만으로 보인다는 걸 알고 있다.  역시나 감탄을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 엄마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던 아이들은 금새 더위에 지쳐 표정이 나빠진다.  다행이 호수 바로 옆에 그 또한 이나라 최초라는 타이핑 동물원이 있어서 우선 그 곳으로 갔다. 동물원도 역시 더웠지만, 숲과 호수를 그대로 둔 곳에 구역을 나누어 동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비록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기는 했지만 자연 그대로의 환경 안에서 살도록 한 배려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동물들을 좋아하는 존재이니 더워도 별 불평없이 재미있게 동물들을 구경했다.     


 동물원에서 나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인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서 검색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데, 갑자기 무섭게 소나기가 내렸다. 그러나 이 나라의 비는 한 시간 이상 오는 법이 없으므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나니 예상대로 비가 그쳤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운 날씨가 잠시 내린 소나기로 습하긴 했지만, 조금 더위를 식혀주었다. 식당에 차를 세워 둔 채 바로 앞에 있는 호수를 잠시 산책했다.  오로지 호수 하나  때문에라도  하루밤 묵고 다음 날 이른 아침 호숫가를 산책하고 싶은 도시 타이핑,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고아쉽게 이포로 향했다.      


 이포로 가는 목적은 오직 아이들을 위한 '로스트 월드'라는 테마파크 때문이었다. 말레이시아의 대기업인 썬웨이 그룹에서 만든 로스트 월드는 생각보다 좋았다. 1박 숙박권에 네 명의 조식과 저녁 시간 테마파크 입장권이 포함된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잠시 방에 올라가 쉬는데, 또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린다. 저녁 여섯시부터 입장해서 밤 11시까지 온천과 야간 동물원과 불쇼 등의 프로그램을 즐겨야 하는데 비가 내리는 폼이 그칠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아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말레이시아의 비는 오래 오는 법이 없다. 우리가 나갈 시간인 여섯 시 쯤이 되자 언제 그랬나싶게 비가 그치고 말끔한 하늘이 나타났다. 다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테마파크에 입장했다.     


   로스트 월드가 위치한 곳은 산 바로 아래여서 저녁 공기가 시원했다. 저녁에만 이용할 수 있는 온천 물에 몸을 담그니 오랜만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더운 나라에서 온천이란게 별 기대가 없었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공기를 맞으니 모처럼 휴식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좀 시간이 지나자 온천탕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도 몸이 뜨겁다고 찬 음료를 찾더니 아홉시 쯤 되어 어린 *영이가 얼굴에 온통 피칠갑을 하고 나타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에도 코피가 자주 났다는데, 갑자기 뜨거운 온천에 들어가서 놀면서 코피가 터진 듯 했다. 아이가 코를 덮는 물안경을 쓰고 놀다가 코피가 나니 물안경 속에서 피가 고여 안경을 벗으면서 얼굴 전체에 피가 묻은 것이었다. 보기에 사실 엄청 심각해 보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모여들었고 주변에 상인이 관리사무실에 연락을 했는지 무전기를 든 여인이 나타났다.  화장실에 씻기러 데려가고 있는 아이를 엄마가 괜찮다는 데도 굳이 응급처치를 해야한다며 의무실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아이와 엄마는 졸지에 끌려가서 응급처치를 받고 사건 리포트를 쓰고 한참 만에 함께 돌아왔다. ㅎㅎ  

 그 바람에 놀이의 흥도 깨지고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은 침대 위에서 신나게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열두시 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느지감치 일어나 식당에 가서  정말 최소한의 배를 채울 음식이 나온 조식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쉬다가 12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호텔을 나섰다. 날은 다시 무덥고 움직일 때마다 끈적한 땀이 흘러 일단 이포 시내로 나가 검색해 둔 피자집에서 다들 푸짐하게 피자를 시켜 점심을 먹었다. 날은 덥고 헤이즈로  공기도 안 좋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 곳은 돌아보고 가야되지 않을까 하고 그 한 곳으로 지목된  '켁록통(극락동)'이라는 동굴로 갔다.      


이포는 산 모양이 둥글둥글한 바위 산이 많았는데, 크고 작은 천연 동굴들이 많은 곳이었다. 극락동굴은 그 중에서 가장 큰 동굴 중의 하나였는데, 우리나라의 환선굴이나 강원도의 동굴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큰 감흥은 없는 정도였다.  동굴에서 나와 페낭으로 출발하는데, 몹시 커피가 땡겨서 오는 길에 다시 이포 시내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아이들은 시원한 초코렛 음료를 마시고,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근처에 있는 유명하다는 두유 가게에 가서  약간 달달한 두유와 생강청을 얹은 순두부등을 포장해서 차를 타고 귀가길에 올랐다. 


마치 중국의 계림을 떠올리게 했던 이포의 둥글둥글한 산들을 뒤로 하고 페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고 두시간 넘게 달려 페낭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니 그 동안 작고 조용한 섬이라고만 생각되던 페낭이 꽤 큰 도시라는 실감이 왔다. 이곳에 온 이래 처음으로 떠났던 조용하고 소박했던 다른 도시로의 짧은 국내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 이렇게 일주일 간의 방학이 지나갔다. 만세. 이제 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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