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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페낭 하늘에 뜬 보름달

이국에서 맞이한 첫 명절, 추석

모든 문화의 용광로가 불리는 말레이시아는 국교가 이슬람교임에도 부처님 오신 날이나 크리스마스, 인도의 축제일인 디파발리 등이 정식 공휴일로 지정되어 쉬고 있다. 특히 중국계가 많아서인지 구정을 Chinese new year 로 지정하여 이틀간 휴일로 지정되어 떠들썩하게 지내는데 이상하게 추석엔 쉬는 날이 없다. 

  

늘 더운나라이다 보니 가끔 날아오는 카톡이나 문자의 명절 인사가 아니라면  사실 명절이라는 실감이 일도 없다. 그래도 굳이 추석이라는 생각을 하니 몸에 쌓인 오랜 습이 뭐라도 해 먹어야하지 않겠느냐 싶은 생각을 낸다. 집 근처 한국 마트에 가서 냉동된 떡갈비와 만두를 한 봉지씩 사서 나오려는데 반값 세일을 하고 있는 당면이 보여서 하나 집어 들고 왔다.  내가 잡채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외국에 나오니 한국에서 별로 즐기지 않던 것들을 먹게 된다.  사실 나는 김치가 없어도 밥을 잘 먹는 사람이다.  오래 전 한 달 간 인도를 여행하면서도 한 번도 김치 생각 같은 건 떠올려 본적이 없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이 곳에 와서 한국에서 보다 훨씬 김치를 많이 먹는다.  맛이 잘 든 김장김치도 별로 손을 대지 않던 내가 중국 배추를 사다가 어설프게 김치를 담기도 하고,  한국마트에서 작은 봉지에 넣어 파는 터무니없이 비싼 김치를 사다 먹기도 하며 밥 먹을 때마다 김치 생각을 한다.      

     

추석이 다가오니 각종 한인커뮤니티에서 엘에이 갈비며, 모듬전 세트, 삼색 송편 등을 배송하는 공지가 올라왔다.  페낭에 사시는 분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을 만들어 단톡방을 통해 판매를 하기도 하고 쿠알라룸푸르나 조호바루에서 이 곳 페낭까지 각종 음식을 만들어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씩  배송을 하기도 한다. 고기와 초콜렛 빼고는 웬만하면 안 먹는 겸이가 그래도 잘 먹는 떡인 송편을 일키로 주문해 봤다.  막상 주문을 해 놓고 나니 괜히 떡이 오늘 날이 기다려졌다.      


지난 월요일 쿠알라에서 아침 일찍 만들고 쪄서 배송된 송편이 저녁 늦게 페낭 킴스마트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저녁 늦은 시간인데도 미리가서 기다렸다가 받아 왔다.  쑥과 단호박으로 색을 내고 참깨 소를 넣은 달콤한 송편을 일주일간 대나무로 만든 찜기에 김을 올려 쪄서 겸이 학교 간식으로도 싸주고 바이올린 선생님도 한 접시 드셔보시라고 내드리고 먹다보니 추석이 오기도 전에 일키로가 금새 바닥이 나 버렸다.      

     

추석인 오늘은 아침부터 겸이 축구 교실에 다녀오느라 장 봐 놓은 것은 손도 못 대고 아침에 냉동 만두를 쪄서 요기를 하고 축구장에 다녀와 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저녁엔 고기를 무한리필 해주는 집 근처 한국식당에 갔다.  같이 식사를 한 겸이 친구네 가족과  식당을 나와 어두워지는 바닷가를 산책했다. 저녁 바닷가인데도 바람이 없다.  조금 걸으니 후덥지근한 공기에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옷이 땀으로 축축해 졌다.    

   

 스트레이츠퀴가 가까워지니 손에 나비며, 토끼, 포켓몬 같은 캐릭터 인형속에 불을 밝힌 예쁜 등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가 식당엔 명절 외식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고 상가 앞 광장에 사람들이 꽉 차서 용이 춤을 추는 공연을 보고 있다. 페낭섬 인구의 육칠십 프로가 중국계 사람들이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달 전부터 마트와 빵집에서 색도 다양한 월병들을 팔고 있었다.     

       

어제는 이 곳에 와서 한 번도 달을 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집이 서향이어서 그런가 보다 싶어  

일부러 달을 보려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겸이와 집을 나섰다. 밤에도 불빛이 환한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한 주택가를 돌아나가 넓은 도로 쪽으로 나가니 하늘에 뜬 달이 비로소 보인다. 여기선 처음 만난 달이다.     


 페낭 하늘에도 달이 뜨는구나.      

오래 못 본 친구라도 되는 양 반가웠다. 그러나 먼 이국에서 올려다  본 달은 뭐랄까,  좀 더 높고 차갑고 멀고 슬펐다.  쌀쌀한 가을저녁 공기가 문득 그리워지는데  페낭의 밤 공기는 아직도 미지근하고 불빛만 너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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