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
드디어 길었던 여름방학이 끝났다. 이곳의 학제에 따라 여름방학은 학년말 방학이다. 이제 5학년, 아침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를 배웅하고 들어와 만세를 외쳤다. 이런게 학부모의 길이구나~
그러나..... 늙은 학부모의 길은 녹록치만은 않다. 페낭에 도착하고 지난 한 학기 동안은 학교 적응 기간으로 생각하고 아이가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해 나가는 것만을 기특하게 생각해 왔다. 이제 이곳에 온 지도 그럭저럭 오 개월이 넘어가고 학년이 올라가니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도 점점 어려워질텐데 그대로 나눠도 되나 고민이 깊어진다.
개학하기 전 날 밤에 아이를 앉혀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은 이 곳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이라서 네가 학교에서 한국 아이들과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그냥 뒀지만, 이제 학년도 올라가고 선생님도 바뀌었으니 학교에서 한국말을 더 이상 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아이는 이해는 하지만 갑자기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니 너무 떨리고 걱정이 되어서 잠이 안 온다고 하는 걸 보니 아직 아이는 아이구나 싶어, 다행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곳에 온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원어민에게 개인 영어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며 영어 공부를 한다. 그 동안 손놓고 있던 나도 방학이 시작되면서 어떻게 방학동안 아이 영어 공부를 좀 시켜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 바로 근처에 한국식 영어 학원이 방학 때를 맞춰 개원했다. 학원에 가서 상담을 해보니 방학기간 동안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두시반까지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학원비도 비쌌지만 과연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한국식으로 빡세게 해야 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힘들어도 방학동안 바짝 공부를 시켜 놓으면 5학년이 되서 학교 수업을 듣는데 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집중해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는 사실 무척 힘들일이었을텐데, 겸이는 일주일 동안 나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런 공부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과연 이 빡센 일정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보냈던 학원은 동생과 조카가 페낭에 오면서 결국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일주일 간의 체험으로 끝났다.
그 다음주에 동생과 조카가 와 있는 동안은 학원을 쉬고 만약 아이가 원한다면 그들이 돌아간 후에 다시 등록을 해서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오후에 학원을 보낼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러나 2 주간 실컷 노는 동안 아이는 그 학원은 절대로 더 다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내 마음 속에도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있었던지라 아이의 말에 두말없이 그러자 했다. 학원에 안 다니는 조건으로 리딩게이트를 매일하고 문장 외우기와 저녁 시간에 이십오분 씩 화상영어를 신청해서 공부하는 것으로 아이와 합의를 본 후 남은 방학 십여일을 억지로 아이와 씨름하며 집에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사실 하루 중에서 공부한 시간은 기껏해야 한 두 시간이었는데, 아이와 실갱이를 하며 공부를 시키려니 늙은 엄마의 체력이 참... 딸렸다. 이래서 학부모 노릇도 젊어서 해야 되는구나 를 실감하는 날들이었다. 오후에는 차가 있는 동안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자는 계획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집을 나가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남은 방학을 어찌어찌 보냈다.
처음 말레이시아로 올 때의 생각은 영어공부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새로운 체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었고, 영어공부에 대한 필요성 정도를 느끼고 돌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이곳에 와서 생활하다보니 자꾸 마음이 흔들리고 바뀌는게 사실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 지, 아이의 욕구와 나의 욕심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잘 지켜보아야겠다 . 좋은 부모 노릇은 못해도 적어도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엄마는 되지 말아야할텐데,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학부모 되기가 많이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