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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그리운 인도

인도 식당에서 짜이를 만났다

 주말에 친구 집에 놀러가는 아이에게 먹을 걸 조금 챙겨 보내느라 함께 한국 마트에 들렀다가 아이를 픽업하러 온 차에 태워 보내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로터스로 걸어갔다. 요즘은 점점 밥을 챙겨 먹는 것이 귀찮다.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퓨전인 뇨냐 가정식을 먹을 생각으로 1층 식당가로 들어갔는데 한편에 있는 인도 식당이 보이자 갑자기 토사이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 인도 식당에서 토세 라고도 부르는 이 음식은 쌀과 콩을 갈아서 얇은 누룽지처럼 철판에서 구워져 나오는 것으로 함께 나오는 커리나 삼발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대형 마트인 우리동네 로터스 시식코너에 있는 인도 식당은 전에 누가 추천하길래  한 번 가서 나시 칸다르(찐 길쭉한 쌀밥 위에 카레와 여러가지 고기나 야채를 얹어 먹는 음식)를 시켜 먹어 봤는데, 저렴한 가격에 한끼 때우고 나왔다는 것 말고 특별히 매력이 없어서 그 이후엔 안 들어 갔었다. 혹시나 토사이는 괜찮을까 하고 시켰더니 메뉴에는 있는데, 지금은 안 한다고 한다.   

   

 그냥 나갈까 하다가 난은 되냐고 했더니 된다고 해서 난 세트에 갈릭 치즈 난 하나를 더 시켰다. 갈릭 치즈난 가격이 5.5링깃 밖에 안해서 난 세트에 추가 되는 줄 알고 시켰는데,  한참 지나서 나온 것이 두 쟁반이었다.  

 난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음료는 뭘로 하겠냐고 인도 남자 종업원이 물으러 왔다. 지난 번 왔을 때 심사숙고해서 망고라시를 시켰는데, 이상한 맛의 음료를 가져다 줘서 그냥 물을 시킬까 하다가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두명의 인도 여인들이 마시는 음료에 눈이 갔다. 긴 유리잔에 담긴 커피 색깔의 음료를 보니 오래전 인도에서 먹었던 짜이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짜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못 알아 듣는다. 역시 내 발음이 문제겠지. 싶어서 "짜이, 짜이짜이" 하고 말했더니 갑자기 "오, 짜이, 밀크티?"라고 묻는다. 아 여기선 인도인들도 밀크티라고 하는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더니 주방에 대고 밀크티도 아니고 짜이도 아닌 어떤 말로 주문을 넣는다.


 곧바로 옆 테이블 여자들과 같은 긴 유리잔에 위에 거품이 이는 갈색 밀크티를 가득 담아 가져다 주었다. 잔을 받아 드는데 잠깐 스치는 홍차향이 뭔가 어떤 예감을 가져온다. 이게 뭐라고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잔을 들어 따끈한 음료를 한 모금 삼켰다.  순간, 울컥 목이 메었다. 내가 늘 그리워하던 그 짜이의 맛과 완전히 똑같진 않았지만, 그때의  짜이의 맛을 다시 만난다면 내가 울게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짜이는 밀크티, 말 그대로 홍차에 우유를 넣고 끓이는 인도인들이 늘 마시는 차인데, 일반 밀크티와 다른 점은 계피나 생강 혹은 향이 강한 인도 향신료를 넣어 주전자에 펄펄 끓이는데, 설탕과 야크젖이 주 원료이고 향신료는 끓이는 사람 맘대로 더하고 빼기도 한다고 한다.       

     

  어느 지역이었는지도 잊은 지 오래지만, 오사카를 경유해 인도에 도착한 전일공수 아나항공(지금도 이 항공사가 있는지 모르겠다)비행기에서 들고 내린 기내 담요를 두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쌀쌀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동네 광장으로 나오면 커다란 나무 아래 리어카 위에 한번도 닦은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커먼 커다란 주전자에서 펄펄 끓고 있는 짜이를 파는 까만 남자가 있었다. 진흙으로 만든 작은 일회용 황토색 토기잔에 따라주던 그 뜨겁고 달고 향기롭던 짜이는 끝에 토기에서 묻어난 흙냄새가 났었다. 밤을 새워 달리던 기차의 딱딱한 침대칸에서 날이 밝기도 전부터 기차 통로를 돌아다니며 "짜이짜이"를 외쳐대던 어린 소년들에게서 사먹던 짜이는 청각으로 남아 있다. "짜이짜이~, 짜이짜이~"      

     

꼭 한 번은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고 떠났는데 아직도 못 가고 있는 그리운 인도, 이곳 페낭엔 적지않은 인도인들이 살고 있어서 인도 현지급으로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인도 식당들이 많이 있다. 페낭에 와서 인도 식당을 몇 번 갔지만 짜이를 시켜 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짜이를 다시 만나 목이 메이는 것은 무모한 열정으로 겁도 없이 인도를 떠돌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은 생각보다 퍽퍽하고 쫄깃한 맛이 별로 없었다. 난을 손으로 찢어 소스에 찍어 먹다 목이 메어  핑계김에 밀크티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두 번째 잔은 반 쯤 마시고 남겼다. 종업원이 종이 쪽지에 볼펜으로 적어준 주문서를 들고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늙은 인도 여인에게 21.50링깃을 계산하고 포장된 난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닭고기 한 조각과 플레인 난에 자색 양파 한조각과 오이 한조각, 라임 한조각이 들어있는 난 세트 13링깃,     

갈릭 치즈난 5.50링깃,  밀크티 1,50링깃  밀크티 한 잔 추가 1.50 링깃.      


추억을 소환해 준 값이 너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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