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너머 Oct 22. 2023

망고의 계절

망고도 철이 있다

  이곳에 오기 전, 말레이시아에는 집집마다 망고나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와서보니)터무니없는 말을 어느 카페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반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집집마다 마당에 노란 망고가 주렁주렁 달린 작고 아름다운 망고 나무를 그려보며 말레이시아로 떠날 날을 고대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지난 겨울, 직항도 없는 이 먼 페낭까지 찾아온 친구들이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하던 것이 "망고나 실컷 먹어야지" 라는 말이었고, 어떤 친구는 "나는 거기 가면 밥은 안 먹고 삼시 세끼 망고만 먹을 거야"라고 하는 걸 보면 망고는 덥고 이국적인 동남아의 달콤한 상징 같기도 하다. 다행이 친구들이 방문했던 2월에 막 망고가 나오기 시작해서 좀 비싸긴 했지만 망고를 실컷 먹고 갈 수 있었다.           

     

 페낭에 도착했던 지난 해 사월, 모닝마켓입구에 날마다 서있는 망고트럭에서 10링깃에 2키로의 망고를 사서 처음으로 망고만으로 배를 채우고 즐거워하던 감흥도 일년이 지난 이젠 시들하다. 그래도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망고가 보이면 꼭 한 두개씩 사게 되는 가장 만만하고 마음을 끄는 과일이 망고인 것은 틀림없다.           

 

  어제 모닝 마켓에 갔더니 드디어 망고트럭에 3K 10RM (3키로에 10링깃) 이라는 프랭카드? 가 붙어있었다. 삼천원에  한보따리 향기로운 망고를 들고 올 수 있는 가장 싸고 맛있는 망고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사실 모닝마켓 입구에 늘 오전이면 자리를 잡고 있는 과일 트럭엔 두 종류 정도의 과일이 쌓여 있다. 가끔은 껍질을 벗기면 진한 자줏빛 과육이 풍성한 용과나 털이 부숭한 람부탄, 또 철이 되면 나오는 망고스틴이나 용안 등이 실려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망고가 가득 쌓여 있어서 나는 망고트럭이라 부른다.           

     

 이곳에 오기 전엔 나도 동남아에 가면 사시사철 맛있는 망고를 싸게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우리나라에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여긴 여전히 더운데도 서서히 망고를 보기가 어려워진다.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가격도 점점 올라가고 게다가 맛도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비싼 돈을 내고 망고를 사지 않게 된다. 한 서너달 이상 망고를 먹지 않고 지내다 보면 문득 망고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좀 이른 봄이 시작되는 일이월이 되면 다시 시장에 망고가 보이기 시작하다가 딱 이맘 때 유월 중순 쯤이 되면 일년 중 가장 싸고 맛있는 망고가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망고의 종류도 다양해 지는데,  흔한 노란 망고 말고도 겉은 초록색인데 껍질을 벗기면 진노랑색의 향도 진하고 맛도 좋은 망고도 있고, 사과처럼 둥글고 예쁜 애플망고와 길쭉하고 엄청나게 큰 핑크 빛깔의 아름다운 레인보우 망고도 곧 나올 것이다. 산지도 말레이시아 뿐 아니라  태국이나 캄보디아, 혹은 호주, 뉴질랜드 등 이웃나라에서 수입되어 들어오는 망고도 많다. 망고의 맛과 모양과 색과 향이 망고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식재료로 쓰이는 초록색 망고들은 사철 나오는데, 여기 음식 중에 여러 야채와 함께 망고를 채썰어서 볶은 망고 볶음도 있고 치킨 위에 망고채를 얹어 주는 망고 치킨을 먹어봤는데, 아삭하고 달콤 새콤한 맛이 낫다.      

     

  얼마간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망고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고나무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노란 망고를 주렁주렁 단 작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아니었다.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가끔 가로수에도 망고가 매달린 걸 볼 수 있는데, 수십년은 된 것처럼 키와 덩치가 커서 거기에 매달려 있는 초록색 작은 망고들이 사실 잎사귀와 비슷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가 않는다.       


 사철 더운 지역인 이곳 페낭에선 식물과 나무들이 무서울 정도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보호수로 지정될 것 같은 덩치가 크고 오래 되어보이는 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조지타운을 지날 때마다 감동이 밀려온다. 그러나 족히 몇 백살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도 실제로는 수령이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누가 선물로 줘서 작은 화분에 키워 본 식물들 때문이다. 늘 햇빛과 바람과 비가 통하는 베란다에 내놓았더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쑥쑥 자라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좀 넉넉하게 큰 화분을 사다가 옮겨 심었는데, 한 달도 안되어 그 화분이 작아 터질 것처럼 번식을 했다. 나중엔 감당이 어려워서 반을 잘라서 버렸는데도 금새 원래의 형태로 번성해 화분 밑으로 잎사귀들이 흘러 넘쳤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은 비를 맞으며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 거의 물을 안 주었더니 확실히 자라는 속도가 더뎌지진 했다. 그래도 잎사귀들이 시들시들한 모습을 보면 또 죄책감이 들어서 가끔 물을 주게 된다.      

     

 아무튼 망고 나무라는 것도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에 가보니 우리나라 시골에 가면 집집마다 감나무 한그루 씩은 담장 밖으로 보이는 것처럼 흔해서, 집집마다 망고나무 한 그루 씩은 있다는 말도 과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도  작고 낡은 지붕을 온통 뒤덮을 만큼 크고 높아서 망고가 주렁주렁 달렸어도 저걸 어떻게 따서 먹나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커다란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나무에 달린 망고 중에 노랗게 익은 망고는 본 적이 없다.  초록 망고는 흔한데, 노란 망고는 아마도 농장에서 대량으로 재배되어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지금 모닝마켓엔 망고 이외에도 이맘 때 한 두달만 나오는 망고스틴, 람부탄, 리치 등이 싱싱하고, 그 비싼 두리안도 조금씩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사철 흔한 파파야와 바나나, 파인애플과 패션후룻, 메론, 구아바, 코코넛, 그밖에 이름도 모르는 열대 과일들이 매대에 가득한, 바야흐로 달고 향기로운 열대 과일의 계절, 훗날 언젠가 이 곳이 그리워 다시 페낭을 찾게 된다면 그 때는 분명 망고의 계절일 것이다.      

이전 11화 그리운 인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