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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Feb 26. 2022

양갱을 넣은 말차 라테

2022.02.23


입춘이 지난 지 좀 지났다. 하지면 여전히 날은 춥다.

나는 아직 경칩이 지나기 전. 동면하고 있는 개구리와 같아 꼼짝도 안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날로 갱신되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보고 경악을 하며 원래 하던 대로 집 밖으로 안 나가고 있다. 

  또 밖에 나가고 있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또 늘었는데, 작년 말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고관절 쪽 수술을 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터라 부모님이 밖에서 일을 보실 때면 내가 곁에서 봐드리게 되었다.


 외할머니댁과 우리 집의 거리는 친할머니 댁과 그리 차이는 없는 듯한데 친가에 비해 그리 방문하는 횟수도 많지 않았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거의 뵙질 못했으니 거의 10년은 못 찾아뵌듯하다. 왕래도 거의 없었고 명절 때도 잠깐 얼굴만 비추는 정도니 할머니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지내고 계셨는지.

 나이 때문이라 그런지 글씨도 잘 안 보이고 잘 들리지 않으시니 TV를 틀어도 흥미가 크게 없으신 듯했다. 날도 춥고 시국도 시국이라 할머니도 많이 답답하신 모양이다.  많이 울적하신 듯해서 어떤 걸 해드리면 좋을까 매일 고민 중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미각은 둔해지지 않으신 모양이다. 유명한 빵집에서 여러 가지 빵을 사 와도 어떻게 그 빵집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빵을 골라 잘 드셨다. 같은 포도가 있어도 그냥 포도는 시다고 안 드시더니 샤인 머스캣은 또 잘 드신다. 그런 걸 보면 내가 맛있는 걸 추구하는 건 외가 쪽에서 유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할머니의 정확한 취향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할머니가 평소 접해보기 어려웠을 것 같은 음식을 대접해드려보고 싶었다. 요즘은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빵이나 케이크를 만들어드리고 있다. 하지만 날이 추워서인지 이스트가 잘못된 건지 빵 발효가 제대로 안되거나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케이크도 꾸미는 데는 소질이 없는 듯하다. 여러모로 성에 차지 않고 괜히 오기만 생긴다. 그래도 할머니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 잘했다고 해주신다. 

 빵에는 음료를 빼놓을 수 없다. 할머니는 커피를 안 드셔서 대신 허브티나 코코아도 해드린다. 이번에는 말차 라테에 팥양갱을 젤리나 타피오카 펄 대신 넣어보았다.

중학교 때 연양갱에 빠져서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뜯어보니 원래 이렇게 작았었나. 내가 그렇게 컸나 싶다. 

양갱에 든 한천이 젤라틴 같은 역할을 해서 약간의 물을 넣고 녹였다 식히면 단단했던 양갱이 말캉하게 변한다. 뜨거운 우유로 하면 한천이 녹아버리기 때문에 차갑게 마시는 걸 추천한다.


1. 양갱은 썰어서 3분의 1컵 (에스프레소 잔 1컵 분량)의 뜨거운 물에 넣어 전자레인지에 1분~1분 30초 정도 데워서 녹인다. 

2. 한번 체에 걸러 컵에 담아 식혀준다.

3. 컵에 차가운 우유를 넣는다.

4. 말차 1 티스푼에 물을 약간 부어 잘 풀어준 다음 설탕 2스푼(설탕은 언제나 기호에 맞게)을 넣고 섞는다.

5. 우유가 든 컵에 말차를 부어준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맛있다고 해주신다. 그러면서 마주칠 때마다 밥은 먹었니? 하시면서 자꾸 뭘 먹으라고 주신다. 할머니들은 손주들 밥 챙겨 먹는 게 중요한 사안인 듯하다.

 아직 밖에 다니기 어려우신 할머니께 베란다에 심어놓은 식물들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아직 겨울이라 볼거리가 없다. 작년에 삽목을 하고 그대로 멈춰버린 수국이 하나 씩 새 잎을 내기 시작하는 걸 보면 봄이 오고 있긴 하나보다 싶다. 할머니는 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요것만 한 새싹이라고 하신다. 그러더니 좋은 사람 빨리 만나라고 하신다. 그다음 이어진 내용은 할머니의 지인이 60세에 결혼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도 60살 먹으면 한번 생각해볼게요 지금은 그냥 할머니랑 살고 싶어요. 할머니와 약속을 하나 했다 봄이 되고 날이 따듯해지면 같이 밖에 나가서 동네 찻집에 차 마시러 다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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