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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Sep 07. 2023

엄마를 기리며

들어가며



엄마가 가신지 삼 년째 되는 날입니다.



엄마의 모든 것을 언제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야속하게도 점점 흐릿해져 가네요.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을 오래도록 빛바래지 않게 간직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우리 엄마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던 제 결혼식 직후 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엄마의 소식을 들은 때는 신혼여행을 다녀와 구청에 혼인신고식을 제출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그간 행복에 겨워 결혼을 준비하고 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날들이 산산이 부서져 아스라이 흩어지는 듯했습니다.



"큰 따님 결혼 치르느라 아픈 줄도 몰랐나 봅니다"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의사가 장갑을 벗으며 말했습니다.



희고 작은 엄마 몸에서 크고 까만 돌덩이 같은 암이 나왔습니다. 수술만 하면 암을 깨끗이 떼어내고 후련하게 건강히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위 상부에만 있을 줄 알았던 암은 이미 폐의 아래까지 넓게 퍼져 있었고 곧이어 흉부로 재발이 되었습니다. 의사는 '오 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로 판정하지만, 우리 엄마가 오 년 후에도 생존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출산하기 열흘 전 돌아가셨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첫 손주가 태어나기 직전이었지요.



저는 만삭의 몸으로 상복을 입고 삼일장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이를 낳았습니다. 엄마에게 그토록 보여주고팠던 그 아기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어여뻤어요. 아기를 품에 끌어안고선 안타까움에 사무쳐 허공에 대고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 낸 게 며칠이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동굴처럼 깊은 슬픔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삼 년 전 가을, 엄마를 보내고 처음 맞던 이 계절은 더없이 공허했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컴컴한 거실 한가운데에 잿빛 아기띠를 메고선 검은 소파에 앉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내다보았던 것 밖에는요. 바깥세상은 여느 때와 같이 잘 흘러가는데 오직 제 세상만이 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채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요.



일상으로 걸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디뎠습니다. 무척이나 힘겨웠어요. 마치 쓸 수 없게 된 다리로 걸으려 힘을 주듯, 엄마가 없는 삶을 살아 나가려 애를 썼어요. 그래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눈 감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를 떠올리며 '우리 큰 딸은 엄마 없어도 잘해나갈 거라' 믿었을게 분명하니까요. 떠난 엄마를 위해서라도 언제까지고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절절했던 슬픔이 점차 일상에 희석되어 갑니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엄마와 함께 할 때 모아뒀던 기록들을 하나씩 꺼내 보려 합니다. 엄마의 미소를 담은 사진들, 엄마의 당부를 기록해 둔 글들, 엄마의 요리법을 적어둔 메모, 엄마의 목소리를 담은 녹음파일들. 엄마가 그리워도 차마 꺼내 보지 못하고 서랍 속에 묵혀 뒀던 것들입니다. 원래는 엄마의 투병기를 잘 엮어 완치 기념으로 주려고 기록했던 건데 이젠 엄마를 향한 회상록이 되었네요.  






이 글은 엄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을 앞둔 제 동생, 엄마의 사랑스러운 둘째 딸에게 결혼 축하 선물
로 보냅니다.  


2017년 10월 나의 결혼식에서.  복숭아 같이 뽀얗고 아름답던 엄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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