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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용 Oct 19. 2020

돈으로 살 수 있는 추억을 팝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유료 추억'을 선사하는 일

추억은 돈으로 만들어야 된다이?


유투버 박막례 할머니가 마카오 여행에서 돈 주고 찍은 기념사진을 발견하고선 툭 내뱉은 말이다. 사진 속 할머니는 여행지에서 대여한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거나, 낚시로 잡은 생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때는 돈이 좀 아깝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추억이었다고 말하는 할머니.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일반적으로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엄마나 아빠가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준 기억, 가족들과 처음으로 놀이공원을 가본 경험, 영화관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몇 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하나쯤은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공짜 추억은 많지 않다. 자전거도, 놀이공원 입장권도, 영화관 티켓도, 다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추억의 대명사인 여행도 그렇다. 항공료, 자동차 렌트비, 숙박비, 식비가 없다면 어디로도 떠날 수 없다. 여행이라는 추억에도 돈이 든다.


광고는 그 지점을 명확하게 파고든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내가 쓰는 카피들은 멋진 추억을 구매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추억을 간직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카메라를 사는 것은 어떨까요!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소중한 대화를 나누고 싶나요? 그럼 이 스마트폰을 장만하세요! 당신의 돈으로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면 근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몇 년 전, KT의 '와이주니어'라는 만 12세 이하 전용 데이터 요금제 광고를 만든 적이 있다. 당시 동료 아트 디렉터가 재미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초등학생의 슬픈 사랑 이야기 속에 데이터 요금제의 필요성을 재치 있게 녹인 광고로 대략적인 시놉시스는 이렇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같은 반 여자 사람 친구와 데이트를 하며 서로 호감을 키워간다. 마침내, 소녀는 '우리 사귀자'는 고백을 카톡으로 소년에게 보낸다. 하지만 모바일 데이터를 다 소진해버린 소년은 제때 답장을 하지 못한다. 그는 한참 뒤에야 '나도 좋아! 사귀자!'는 메시지를 보내는데... 그녀로부터 온 카톡은 차갑기만 하다. "이미 늦었어. 사랑은 타이밍이야.." 사랑에 실패한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트린다.


슬프고도 귀여운 초등학생의 사랑 이야기 덕분에 많이 웃으며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선배와 함께 이런 엔딩 카피를 썼다.


사랑에는 늘 데이터가 필요하니까
KT 와이주니어 요금제
사진 출처: KT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지만, 사랑에 도움이 되는 요금제는 가입할 수 있다. 사랑에도, 추억에도, 때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걸 기분 좋게 전달하는 게 광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추억은 돈으로 만들라는 할머니의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오늘도 카피를 쓴다. 마케팅은, 광고는 기꺼이 구매하고 싶은 멋진 추억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난 추억을 잔뜩 만들 것이다. 보다 ‘값진' 추억을 위하여!



-불멸의 데이터 요금제 [KT Y주니어 드라마 1편] 광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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