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용 Oct 21. 2020

대한민국 전 국민 카피라이터 설

헛소리 같은 주접 댓글로 실전 카피 쓰기

유튜브에서 영상을 볼 때마다 빼놓지 않고 확인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댓글. 영상보다 더 웃긴 댓글이 한두 개씩은 꼭 달려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댓글을 보려고 유튜브를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재미난 댓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격하게 아끼는 것은 '주접 댓글'이다. 이 댓글의 핵심은 영상 속 주인공들을 향한 과도한 애정 표현인데 무엇보다도 그 표현 방법이 아주 크리에이티브하다. '대한민국 전 국민 카피라이터 설'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절로 든달까.


누가 처음 시작한 건지는 몰라도 몇몇 주접 댓글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5/7/5음 17자 규칙을 가진 하이쿠나 14행 1연에 일정한 리듬으로 이루어지는 소네트처럼 나름의 법칙이 존재한다. 댓글에도 형식미가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정도면 온라인 기반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불러도 손색 없다.


주접 댓글의 규칙은 이렇다. 처음은 보통 부정적인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첫 문장만 보면 충분히 악플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댓글의 마지막 문장에는 말장난을 활용한 반전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00님, 노래 실력 완전 거품이네요! "

숨겨진 댓글: 언빌리'버블'(Bubble)


"00님, 요즘 인기에 구멍이 많다면서요?"

숨겨진 댓글: 황'홀'(Hole)



'아 이거 악플이네'라고 생각하면서 댓글을 읽다 보면, 그 밑에 숨겨진 어이없고도 귀여운 진심이 드러난다. 짧은 문장 속에 기승전결이 다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헛소리를 격하게 아끼는 나 같은 카피라이터에게 이런 댓글은 훌륭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근사한 주접 댓글을 발견할 때면 나는 황급히 메모장을 찾는다.


언빌리'버블'이나 황'홀' 같은 주접 댓글 속 말장난이 재미난 점은 하나의 단어 속에 숨어있는 다른 단어를 발견해낸다는 것이다. 전체 발화 구조가 반전을 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여기까지 분석을 마쳤다면 이제는 실전에 활용해볼 차례. 주접 댓글의 공식을 참고해서 실제 카피를 써볼 수도 있겠다.


참고로, 나는 회사 디지털 매거진에 한 달에 한 번씩 사진 한 장에 어울리는 짧은 카피를 쓰고 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이다 보니 어이없고 웃긴 느낌보다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내용으로 카피를 접근하는 편이다. 이번 달에는 시간에 대한 카피를 썼다. 주접 댓글의 구조를 참고해서 처음 끄적인 카피는 이랬다.


여러분, 시간이 왜 금이게요?
지'금'이 있으니까~


음.. 어쩐지 썰렁한 말장난 같다. 실제로 이런 카피를 회사 매거진에 보냈다면 편집자 분이 꽤나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보다 감성적인 톤으로 말투나 표현을 정리하고 조금 더 내용을 추가해서 카피를 완성해보았다.


#Copy

만나자는,

보고 싶다는 말 앞에

지금을 붙여보세요


모든 시간은 금입니다

지금, 이란 시간 덕분에


주접 댓글을 참고해서 귀여운 말장난이 들어간 카피를 쓸 수 있었다. 편집자 분도 큰 이견 없이 해당 카피를 매거진에 기고해주셨다.



카피의 내용처럼 가장 빛나는 시간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황금 같은 시간이니까. 그리고 메모는 그 눈부신 순간을 기억하게끔 도와주는 멋진 방법이 된다.


지금 재미난 헛소리가 보이거나 들린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바로 메모하기를 권한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면 예쁘다'는 시구처럼 헛소리 같은 문장들도 자세히 보면 ‘카피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헛소리만 잔뜩 모아둔 메모를 보면 우울할 때에도 꽤나 유용하다.

이전 07화 말장난을 가볍게 보는 건, 경기도 오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