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용 Oct 25. 2020

PC방에 오지 말라는 PC방 전광판

없으면 아쉬운, 그 마음을 이용하자

PC방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하려면 어떤 말이 좋을까?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PC방이 꽤나 많은 편인데 입구 앞에 놓인 홍보용 배너 문구는 대개 이런 식이다. 이곳은 최고 사양 PC로 가득합니다! 맛있는 음식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담배 연기 걱정 없이 고사양 게임을 쾌적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PC방의 장점을 있는 힘껏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여기 조금 다른 메시지를 던지는 PC방이 있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중국의 PC방 전광판 문구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젊은이여 인터넷만 계속하고 있지 말라...
허구의 세상에서 벗어날지어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태양 아래를 산보해 보아라...
하루가 지나면 깨닫게 될 것이다...
역시 인터넷은 재미있다는 것을...

(출처: 트위터 @akatuki11)


어쩐지 헛소리 같은 말인데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공감이 간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너무나도 맞는 얘기인 나머지 절로 웃음이 난다. 왜 그런 걸까?


PC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부모님이나 지인들로부터 한 번쯤 이런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PC방에서 인터넷만 하지 말고! 게임 좀 그만 해라! 책도 읽고 공부도 좀 하고! 하지만 PC방을 잠시 떠나보면 알게 된다. PC방이 더욱 간절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며칠 뒤 PC방을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PC방이 재밌게 느껴질 것이다. 중국의 PC방 전광판은 '상실감에서 오는 그리움'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메시지의 시작을 '인터넷만 하고 있지 말라'라고 한 것도 전략적이다. 전광판의 긴 메시지를 다 읽게 만드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관심 없는 내용을 읽고 싶어 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PC방 전광판에서 PC방을 오지 말라고 주장한다면? 일단 흥미가 생긴다. 어떤 얘기가 나올지 궁금해지고 어느새 다음 문장을 읽게 된다.


역설적인 첫 문장으로 관심을 끌고 이내 자연스러운 반전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화법. 이것은 중국의 PC방 전광판을 넘어 실제 광고에서도 자주 쓰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 ‘버거킹’에서 2009년에 집행한 <와퍼 대공황(Whopper Freakout)>이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광고가 있다. 약 8분 정도의 실험 카메라로 만들어진 이 광고 속에선 다소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버거킹에서 가장 유명한 햄버거인 와퍼를 더 이상 버거킹에서 판매하지 않겠다고 매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때 곳곳에 숨겨둔 몰래카메라가 소비자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불타오른다.


"지금 농담이죠?"

"매니저 오라고 해요!"


동시에 이들은 서러움에 북받쳐 와퍼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햄버거인지를 고백한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와퍼가 최고란 말이야!"

"내가 와퍼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와퍼를... 30년 동안.. 사랑했소..."

"와퍼... (울상을 짓는다)"


충격과 공포와 억울함과 아쉬움에 휩싸인 소비자들. 하지만 영상의 후반부에는 버거킹의 마스코트인 '킹'이 짜잔! 하고 나타나서 와퍼를 전해준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몰래카메라였다고 말하면서. 그러자 사람들은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와퍼를 먹는다. 와퍼가 곁에 없을 때 느껴지는 절망감을 통해 도리어 와퍼가 얼마나 소중한 햄버거인지를 광고 속에서 은근슬쩍 알린 것이다.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당신이 마냥 좋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없다면 나의 삶이 얼마나 힘들지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멋진 아침에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자’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 멋진 아침,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까요?'라고 되묻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소중한 것이 없어졌을 때 나의 일상이 얼마나 바뀔지를 상상하게 되고, 도리어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카피나 아이디어가 고민이라면, 때론 중국의 PC방 전광판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은 없으면 무진장 아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아쉬움을 슬쩍 건드려주는 순간, 소비자들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던 애정이 슬그머니 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전 09화 비유는 새로운 VIEW를 선사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