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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Feb 05. 2023

우상

이전 글에서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나의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이 세계에 어찌 사랑만 존재한단 말인가? 싫었던 적도 있으며, 내가 이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어리석은 방황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언제나 문을 열고 나에게 사랑을 주는 나의 가족. 나는 그런 그들을 사랑하며,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다.


아버지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14살, 15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생 시기였던 것은 기억한다. 아버지는 한창 아버지의 사랑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시기에 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공부는 손에서 놓지 않으셨었다. 학창 시절에 언제나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맞지 않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고, 재수를 고민하셨지만 돈이 없어 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학교에서 누구보다 더욱 악착같이 공부하셨다고 한다. 끝내 모두가 알아주는 대기업에 취직하셨다. 나는 이러한 아버지를 존경한다. 정말 하나 없이 시작해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내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시기에 많은 꿈을 포기하셔야만 했다. 나는 그것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 그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나는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많이 나이를 먹어 흘릴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닮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언제나 지혜로우시고 인자하신 분이며, 어렸던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셨던 분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그 어머니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어렸을 때 죽음이란 단순이 볼 수 없을 뿐이지,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픔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그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알려주었다. 나는 어머니의 성격을 닮았다고 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마 그 일부를 가졌을 뿐이지, 나는 어머니처럼 지혜롭지도, 인자하지도 않다.


나의 혈육, 나의 동생은 음악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큰 재능이 있음을 알았다. 함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동생은 나보다 습득력이 빨랐다. 어렸을 적에 나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꿈은 나보다는 나의 동생이 더욱 잘 어울린다. 나는, 나의 동생이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듯 보여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동생이 이렇게 자신의 길을 찾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나의 동생에게 형으로서, 아니, 예술을 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예술가가 뱉는 모든 모든 문장은 언제나 진심을 담고 있으며, 예술가가 쓴 모든 문장은 진실이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예술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저것이며, 많은 예술가가 비극의 절벽 아래에서 몸을 던지고 펜을 놓치는 이유도 저것이다. 예술가는 진심과 진실을 수용하고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진심을 담은 소리가 소음처럼 들리는 날도 있겠지, 진실을 쓴 문장이 가슴의 한 부분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날도 있다. 그 모두를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예술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사라질 것이다. 나 또한 나의 동생의 기억 속에 남아 언젠가 사라지겠지. 이것이 신이 정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우리는 결국 죽어 사라진다. 이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자신은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당연히 사람이니, 그러한 것이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더 도움을 주고 싶다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사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기적으로 살지 않으면 결국 손해를 보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나 손해를 보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손해를 보는 만큼 누군가는 이익을 취한다. 당장에 내가 잃은 것이 아닌 누군가 미래에 취할 행복을 생각하라고.


실제로 아버지가 해외에 있었을 때 일이다. 회사에서 일하던 청소부 아주머니를 보며 무언가 안쓰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멕시코라는 나라는 참으로 신기한 나라다. 상속세가 없고, 직업 선택에도 참으로 신기한 경우가 있는데, 예로 부모가 교사면 그 자식도 교사가 될 수 있는, 그러한 신기한 나라다. 그러니 한 번 부자는 끝없이 부자가 되고, 한 번 가난하면 끝없이 가난하다. 아버지는 그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매달 경제적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는 그 아주머니의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를 때려치우고 일탈을 일삼았을 때 아버지에게 도움을 부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아들을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다. 결과적으로 멕시코의 명문 대학 입학에 성공했고, 현대라는 대기업 입사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최근에 그 아들의 동료가 한국에 출장을 왔는데, 작은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맙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런 부모님을 존경한다. 언제나 나에게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보았던 부모님은 그러하시지 않았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언제나 남을 위해 힘썼다. 능력이 있으면 도와라, 작은 도움은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는 선순환의 시작이 된다. 아버지는 술잔을 기울이며 술김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며칠 전에 어머니에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말도 없이 복수전공을 바꾼 사실을 말씀드리기 전에  '아들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한 행동에 대해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 거야?'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그런 걸 왜 물어봐, 아들이 그렇다면 당연히 엄마는 인정하고, 존중하고 도와줘야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끄럽다.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음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언제나 방황하는 모습이. 그리고 그 모습도 언제나 열린 문으로 사랑해 주시고 멀리서 지켜보며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시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내 인생 바람이 있다면, 나는 나의 부모님에게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아들이 되는 것. 나의 부모님, 나의 가족이 그러하였듯 도우고 베풀며 살아가는 것, 그를 위한 능력을 갖추는 것. 인생의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젠가 부끄러움 없이 부모님 앞에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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