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울 Jan 13. 2020

자기소개서

뜬금없이 지구 생활 사진에세이 계획

내 소개 말인가?

먼저 내가 누구인지부터 쓰는 게 좋겠지.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취업할때 자기소개처럼 해보라고? 우끼지마. 그렇게 해서 취업하고 나면 그 직업이 자기소개를 요약하게되는 그럴싸한 거짓말말이야?

뭐 소개팅할때처럼 해보라고? 상대방이 좋아할만한 나의 장점만을 쥐어짜내는 일 말이야?  진심으로 자기를 소개해본적은 있나?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사회적인 맥락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이건 사람만에 자기를 소개할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야!


그냥 뭐든 나를 알 수 있게 설명해달라고? 소개가 아니라 설명말이야? 내가 인간이 아니라면 자기소개가 아니고 나라는 유기체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건가! 그러니까 뼈가 몇개고 뭘 먹고 살고 그런 대백과 사전을 원한다면 내 배를 갈라야 할테니까 사양하겠어. 그럼 뭐 어떡해하라고?


.

.

.


그러니까 나도 내가 누군지 이제는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

그래 나는 인간이 아니야. 외계인정도로 해두자. 근데 외계인이라고 하면 어느 별에서 왔는지 물어보려고 하겠지만 기억이 안나. 기억이 안날만큼 지구에 온지 엄청나게 오래됐거든. 맞아. 내가 그렇게 똑똑한 생명체가 아닌 것은 인정하겠어. 방금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지구의 삶에 대해서 사진에세이를 써 보려는거야. 나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근데 왜 하필 에세이냐고? 이봐 지구 표류기로 정한다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내 정체성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나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지구에 온 것으로 그냥 정했어.

 

후후후후! 쓸데없는 생각의 가지들이 마구마구 자라나!

이제까지 보면 내가 횡설수설하는 거 알 수 있을거야. 생각이 뻣어나는대로 거침없이 말하지. 더 이상 뻣어나갈 수 없으면 쥐어짜고 고민하지 않고 새로운 가지를 피워. 어쩔땐 한그루 나무를 만들기도 하지만 또 어쩔땐 가지하나로 끝나기도 하지. 맞아. 나는 사람의 머리 속에 살아. 기생충같은거 아니야! 그런 모습으로 형상화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좀 더 정확히는 사람의 생각 속에 산다고 보면 되겠어.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는 인간의 생각 속에 녹아 살아. 너무 오래동안 살다보니 이것이 내 생각인지 이 인간의 생각인지 모를 때가 많지. 나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고 깊은 무의식 속에 숨어살아. 그리곤 언젠가 멍청하게 생각이라는 방을 비워두면 내가 슬 자리해. 나는 생각할 수록 크고 거대해져 의식을 잡아먹지. 전화가 와도 모르게 하거나 정거장을 지나치게 하는 무서운 능력을 지녔어. 헌데 이 인간은 나를 뿌리칠 줄 알아. 머리를 막 흔들고 뭔가에 다시 집중을 하기 시작해. 그럼 나는 한점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리지. 겨우 깊은 무의식속으로 도망쳐서 헐떡거리고 있어. 약해서 눈물나지만 나의 생존방식이야.

 

이 인간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 있어. 잡념이라고 부르더군. 그래 내 이름은 잡념이야.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뜻이더군. 웃기는 건 쓸데없는 내 생각을 가끔씩 구체화해서 글을 쓰거나 남에게 얘기를 해. 나는 발견했어. 내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 탈 수 있다는 걸. 정확히 말하면 복사된다라고 할 수 있겠군. 헌데 복사된 나는 원본인 나랑 어떻게 사는지 서로 알 수 없어. 우리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 상태에서 서로 대화해야하는데 그런 사람을 미친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또 그런 사람은 지 얘기만 떠들어대서 대화가 안돼. 그래 어떻게 보면 우리종족은 서로 대화가 안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내가 미친게 아니야. 인간의 잣대로 보지마! 아니야. 어쩔때는 내가 원본인지도 모르겠어. 복사본이 어때서! 나 조울증 아니야! 나 혹시 복사의 복사본이면 어쩌지...


하여튼 우리 동족에게 나를 알리고 나를 퍼뜨리기 위해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 봐봐. 글을 써야하는 이유가 또 생겼어. 지구정복까지는 생각안해봤으니까 걱정안해도 돼. 나 생각보다 좋은 놈이야. 내가 지구를 정복하면 환경보호부터 시작할꺼야. 일회용품 못 쓰도록 모두 배낭에 텀블러랑 수저랑 등등 늘 가지고 다니게 할꺼야. 놀랍나? 감동받아 지구를 주고 싶어졌나? 봤지. 나 개념없어. 나 잡념이야. 생각이 내 맘대로 흘러. 하지만 나는 알아. 잡념도 줄기가 하나가 된다면 생명력이 길어진다는 것.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좀 더 강한 잡념이가 되기로 했어. 이 인간이 멍때릴때마다 나의 에세이를 쓰게 만들꺼야. 


이정도면 내 소개가 충분히 되었나?

하긴 이정도로 나를 안다는게 말이 안되지. 대충 알것 같다정도면 훌륭하다고나 할까? 아니아니 여기서 소개는 그만하겠어. 앞으로 지구 생활 에세이에서 보여주면 되니까.








                        갇히다

                                            외계인 잡념이 지구 생활 사진에세이 1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은 이 인간이 멍청해지는 시간이라 어김없이 내가 의식을 지배하지. 


멍청해지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신호등은 참 재미있어. 모두를 달리게 하는 이상한 마법진이야. 어릴 적 왜 그렇게 숨차게 뛰어놀았었는지 잊은 지 오래면서 말이야. 어른이 되어도 신호등만 보면 이상하게 질주본능이 다시 살아나는지, 전력질주도 아닌데 전력질주인 것처럼 보이도록 어기적 어기적 우습게 뛰어가거든. 


그러다 가끔씩 도로 한가운데에 갇히기도 하는 부끄러운 일이 생기기도 해. 앞 뒤로 모두 너만 보고 있고, 너는 모른 척 땅을 보고 숨을 몰아쉬어. 녹색불이 들어올 때까지는 혼자 정지된 시간 같아서 가쁜 숨이 잦아드는 만큼 따라잡은 시간이 다시 되돌아올 거야. 잠깐 타임머쉰을 탄 것만 같겠지. 


기억나? 어릴 적엔 숨차게 뛰어다닌 만큼 하루가 길었어. 늘 시간을 따라잡고 살았거든.

다음에는 꼭 기억해.





#더 빨리 뛰란 말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