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잘 나가는 조직은 무엇이 다를까 /제니퍼 모스
직장 내 번아웃의 개념은 1970년대에 생겨났지만, 의료계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 WHO는 마침내 제10차 국제질병분류 ICD-10에 번아웃을 포함시키면서 이를 “만성적 업무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결과로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이라고 규정했다.
- 에너지 고갈과 소진.
-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한 거부감 또는 부정적인 생각의 증가, 냉소주의.
- 업무 효능감의 감소
<잘나가는조직은무엇이다를까>,제니퍼모스/강유리/밀리의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3295
내가 느끼는 번아웃은 어떤 일에 몰입하는 상태가 지속되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소모된 상태로 과도한 업무 때문에 지친 감정, 마음상태라는 막연한 개념이었다.
조직관점보다 개인으로서 극복해야 할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번아웃 조짐이 보일 때면 새로운 취미생활 시작해 보기, 운동, 심리상담, 명상과 같은 행동으로 극복하려 했다.
조직의 일이라면 개인생활을 미루더라도 업무를 끝장내는 성격이라 일과 일상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아 나는 번아웃에 취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일과 일상을 분리하기 위한 퇴근 후 할 일, 주말에 새롭게 경험해 볼 것 등 다양한 일정을 만들어 끊임없이 나를 자극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시도를 할 에너지조차 내기 싫은 번아웃이 왔다. 최소한 1년에 두 번씩은 미용실에 가서 파마도 하고, 주말에 입을 옷 쇼핑을 즐기기도 했는데. 머리는 덥수룩해지고 살이 쪄 몸을 가리기 위한 펑퍼짐한 옷을 즐겨 입으며 나를 꾸미는 것에 소홀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거울 속 방치된 나의 모습이 보였다.
온갖 불안, 우울함을 딛고 일어서야 할 힘을 내야 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는 항상 외롭고 막막하다. 번아웃이 처음이 아닌지라 과거의 번아웃을 살펴보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혼돈의 시기가 지나갈 때도 있었다. N번의 번아웃을 이렇게 보내다 보면 매 순간 반응하기보다 성장을 위한 꺾임을 견디는 단단함도 생긴다.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인간은 극복의 동물이다 보니 나를 스스로 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에 차츰 나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번아웃의 정도가 깊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질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제대로 찾고 싶었다. 단순히 일을 그만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기에 나의 번아웃은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반복되는 번아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잘나가는조직은무엇이다를까>,제니퍼모스
일을 맡으면 잊어버리지 않고 꼭 마무리하는 책임감은 조직에서 인정받았던 나의 강점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자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약점이었다. 중간관리자로서 보고서 숫자가 틀린 채 공유가 되기라도 하면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보지 못한 나의 책임과 실수를 과도하게 질책하곤 한다. 쉽게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는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나의 전부를 평가할 때가 있다.
친구들은 종종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면서 왜 본인에게만 그렇게 빡빡하게 굴어?" 처음에는 겸손하게 행동하려 했는데 지나치게 나를 낮추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나 괜찮은 사람이야 스스로 격려하고 인정하기보다, 항상 모자란 모습을 더 부각하는 버릇이다.
번아웃도 사람 가려가며 찾아온다.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회복 탄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에너지를 상황에 맞춰 발휘한다.
지금 나의 번아웃은 조금 억울하다. 본래 매사 자신감 있고, 부족하거나 실수하더라도 사람이 배워가면서 일하는 거지 생각하며 모르는 것에 부끄럼없이 나의 이야기를 소신 있게 내뱉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업무적으로 모르는 상황을 마주하면 심하게 당황하고 '나는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는 일들인데 나만 어려워해.'라는 식으로 자책한다.
그러다 보니 일이 끝난 뒤에도 나의 시간, 일상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그저 할 일 없이 유튜브를 보다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룬다. 출근이 싫어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퇴근 후 운동은 꿈도 꾸지 못하니 건강이 안 좋아짐을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시도하기가 싫었다.
사실 이 불편함은 승진 이후로 급격히 심해진 번아웃이었다. 승진하면 좋은 거 아니냐 싶겠지만 나는 직급이 오른 만큼 내가 그에 합당한 역량을 가진 사람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을 크게 가졌다. 오히려 승진한 이후에 나의 부족한 업무 소통능력, 관계 이해도를 느끼면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의 마이크로 매니징은 더욱 심해져 사전에 확인받아야 할 일이 늘어났으며, 나의 긴장상태를 늦춰주기보다 더욱 북돋는 과도한 경쟁 분위기와 압박이 번아웃의 액셀을 밟게 했던 것이다. 적당한 긴장감은 성장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조직 내 일소통이 자유롭지 못하고 억압된 상태라 나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한 건 나의 번아웃 시작은 내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욕심, 뭔가 하려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과도한 업무와 조직 내 불편한 소통 방식도 영향을 미쳤지만, 나의 질병은 소모된 번아웃과 앞으로의 의지를 불태운 번아웃의 만남이다.
지나친 욕심이 다른 에너지를 뺏어가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나의 번아웃은 행동하기 위한, 움직임의 번아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직장생활 비슷해, 다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별거 있겠냐.' 하는 사람들의 말에 나만 유난히 예민하게 매번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을 하는지 번아웃마저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힘듦은 내가 제일 많이 위로해 주고 공감해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 상담도 내가 보지 못한 객관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나의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하고 알 순 없다. 왜 이 상황이 괴로운지, 왜 불편한지, 정확히 무엇이 힘든지, 그래서 난 어떤 걸 원하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진단해야 한다.
내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따르는 것이 이 질병의 핵심 치료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