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면 무조건 가야 하나요?

세 번째 면접

by 계발자


A사 B2B 국내 영업직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들이 다루는 주요 입점사 채널에서 오래 일한 내 경력을 어필하여 헤드헌터를 통해 서류 접수했고 1차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직접적으로 업무가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경쟁사나 산업 트렌드에 익숙하기 때문에 업무는 빠르게 익힐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면접을 진행했다. 실무자 면접 뒤 대표 면접까지 바로 제안하길래, 어느 정도 합격 신호를 예상했다.


이틀 뒤, 헤드헌터를 통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대표 면접까지 진행했던 당시 분위기 흐름상 합격을 예상했는데, 이유는 듣고 싶었다. 실무자들은 합격을 원했지만 대표님이 합격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대표가 왕이니, 최종 결정자가 아니면 모든 게 아닌 게 되는 구조를 이해하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기업 지원도 헤드헌터를 통해 제안받은 거라 회사에 대해 필히 꼭 입사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기 때문에 진정성이 부족한 게 느껴졌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면접을 보면서 임원, 실무자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인재상을 원하는지 대략 감이 왔기 때문에 함께 하고픈 조직은 아니라고 단념했다. 회사의 인재상이 있듯이 구직자도 내가 지속적으로 일하고 싶은 기업상이 있다. 단순히 몇 개월 일할 곳이 아니라면 당연히 함께 일할 사람들과 형성하는 조직문화, 분위기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면접 결과가 크게 아쉽지 않았고, 면접 태도와 질의응답에 대해 익숙해지는 경험을 가져갈 수 있었다.


다른 스타트업 기업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A사를 연결해줬던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받았다. 실무진들이 대표를 설득해서 나를 합격으로 처리하겠다는 결론을 냈으니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이미 불합격으로 내 머릿속에서 지웠던 기업인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출근이라니. 왜 나의 면접 결과, 출근은 항상 이런 식인 걸까 한숨 쉬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기업 가치를 함께 하고 싶은 스타트업이 있어서 면접을 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바로 결정하지 못했고, 여러 가지 조건을 떠올리며 빠르게 답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짧게 스쳐간 생각들.

연봉을 맞춰준다.

브랜드 매출은 나쁘지 않은 곳이다

개인의 역량, 의지로 모든 걸 주도하라는 강압적인 업무방식을 강요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급하게 사람이 필요해 보였고 아쉬운 마음에 채용해보자라는 식이 아닌가..


경제적인 조건도 맞춰준다는 점에서 ‘돈’에 혹하긴 했지만 오래 일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 최종적으로 거절 의사를 전했다. 헤드헌터는 자신의 몫이 눈앞에 있으니 “좋은 조건에 그냥 하시죠”라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도대체 뭐가 좋은 조건인지 모르겠고 내가 일할 곳인데 끌려다닐 필요가 없으니 단호하게 매듭짓고 대화를 끊었다.



구직자들에게 최종 합격은 매우 바라는 순간이다. 이 합격은 나의 능력, 경력을 인정받고 한 단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 새로운 회사와 함께 또 다른 커리어를 쌓아가며 성장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매우 절실히 원하는 마지막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최종 합격이라는 것에 나의 삶을 모두 맡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전 회사에서 직접 신입사원, 인턴사원들을 최종 합격시킬 수 있는 평가자 직책 권한이 있었을때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항상 조언했다.


회사가 당신을 평가하는 것처럼
당신도 회사를 평가하라


정규직 전환, 승진을 위해 평가자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일을 해내기보다 눈치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굳이 혼자 작아질 필요가 없는데도 약자라고 느끼며 불안함을 가진다.


나도 본격적인 취업시장에 뛰어들어보니 한없이 작아지고, 상대방에게 내가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예의 갖추기 급급했다.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는 보지 못한 채 무작정 그들의 마음에 들어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과정을 통해 내가 잊고 지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고, 기업을 볼 때 서로 직무가 얼마나 적합한지 맞춰가고 나도 그들을 평가하는 자세로 조금 더 당당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러다 취업을 아예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 모르지만, 이왕 더 좋은 환경과 성장 가능성을 염두해서 나아가 보자고 결심한 퇴사인데 급하다고 달려들 필요가 없다. 갑자리 주체 못 할 급한 마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스스로 잘 다독이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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