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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an 15. 2022

그 곳의 자작나무

지난 계절 모은 빛깔들 4


추운 나라가 배경인 문학이나 영화에는 자작나무가 종종 등장한다. 북부 지방 깊은 산에 자생하는 자작나무가 가진 운명이다.


오래된 러시아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첫 장면도 광활한 자작나무 숲이다. 사이로 요란하게 연기를 내뿜으며 증기 기관차가 거침없이 달린다. 모스크바로 향하던 기차가 잠시 멈춘 곳 바깥 풍경도 빽빽이 서있는 자작나무 길이다. 그 길에서 한 무더기 사관생도들이 몰려오고, 기차 안에서 바깥을 응시하는 여주인공 얼굴과 자작나무 길은 사각 창문 안에서 겹쳐져 조금 길게 비친다. 희극으로 시작했으나 비극으로 끝날 짧은(그러나 남은 인생을 지배할) 사랑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북유럽 작가 린드그렌의 가장 슬픈 동화 <그리운 순난앵>에서 자작나무는 희망과 이상향을 상징한다. 부모를 읽고 사악한 농부의 집에 내맡겨진 오누이 마티아스와 안나의 힘겨운 생활은 헛간에 사는 들쥐들처럼 끔찍한 잿빛이라고 그들 스스로 말한다. 일만 시키는 농부의 손아귀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날은 추운 겨울에만 열리는 마을 학교에 가는 때다. 이마저도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친구들의 놀림으로 괴로운 날이 되는데,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빨간 새는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폴폴 나는 빨간 새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한겨울 벚꽃이 흐드러진 담장 입구다. 빨간 새는 어디로 갔을까? 살짝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니 빨간 새는 자작나무에 앉아 있다. 작은 이파리들이 동그랗게 말려 있는 자작나무에 빨간 새가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자작나무 잎사귀에서 봄 내음이 풍겨 와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곳을 갈때마다 빨간 새는 봄날의 자작나무에 앉아 있었다.


바다 건네 북미 캐나다로 가면 Anne의 친구 다이애나가 이름 지은 ‘자작나무 길’이 있다. 착한 다이애나가 앤에게 양보하지 않고 유일하게 지은 길 이름이다. 앤은 연인의 오솔길, 제비꽃 골짜기처럼 시적이지 않다고 아쉬워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라는 건 인정한다.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 첫 길에서 희고 가냘픈 자작나무를 보며 새하얀 새색시 같다고 과하게 수다를 늘어놓는 앤, 낭패를 안고 가던 매튜만큼 앤 마음에도 불안감은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앤리스 먼로의 단편, 건조하나 지독한 사랑이 나오는 <아문센>에도 낯선 기차역 바깥 벤치에서 미래를 기다리던 젊은 여성이 있었다. 앤은 선택당했고 비비언에겐 스스로 선택한 미래였어도 희망과 짝인 불안이 따라오는 건 마찬가지다. 돈을 위해 폐결핵 요양원 교사로 지원한 그녀가 썰렁한 전차를 타고 도착한 숲 속에서 들어온 첫 풍경은 이랬다. 흰색 껍질에 거뭇거뭇 반점이 있는 부러질 것 같은 자작나무들과 어수선한 작은 상록수들이 졸음에 겨운 곰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 하지만 자작나무는 가까이에서 보니 희지 않았다. 회색이 도는 노란색, 회색이 도는 푸른색, 그리고 회색이었다. 러시아 소설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


낯설고도 익숙한 서양 문학에서 희망, 불안, 사랑...이라는 형체 없는 마음들에 자작나무가 배경으로 등장한다면, 가장 가깝지만 상상마저 쉽지 않은 북녘땅  자작나무는 생활 밀착형이었다.

분단에 의해 묻혔다가 우리 곁에 온 백석의 시에 잘 나와있다.


              백화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시인에게 자작나무는 사랑과 희망을 말하지 않아도 그저 삶을 지탱해주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남다른 자태는 어쩔 수 없어 오래된 연인처럼 시심을 불러와 가보지 못한 그곳을 우린 그려보게 되었다.




자작나무는 북부 지방 심심산천에 자라 남한에는 자생을 하지 않는다. 만약 산길에서 수피가 회백색으로 잘 벗겨지는 나무를 발견한다면 사스레나무나 거제수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여행지로 이름난 몇몇 숲은 심고가꾼 곳이다. 그러니 정원수로 맞지 않고 바람 불고 습한 물가는 더더군다나 살기 어려울 것인데 어쩐 일인지 동네 강가에 아담한 자작나무 길이 조성되었다. 볼품없었던 삼년전 모습이 무색하게 지난 여름엔 제법 그늘이 생겨 발길이 자꾸 향했다. 주말 아침마다 한더위를 달래보겠다고 간단히 샌드위치를 챙겨 그곳으로 가는 부지런을 떨게했다. 차오르는 햇살을 피해 그늘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기꺼이 식사를 마쳤던 그때의 온도가 소소한 추억으로 남다니. 영화처럼 노란 단풍이 들진 않지만 잎을 떨구고 쪽뻗은 하얀 둥치가 빛나는 요즘 인색하게 가끔 내려앉는 하얀 눈이 운치를 더한다. 자작나무를 이제야 가까이서 보게 된 남쪽 지방 사람은 그저 오감할 뿐이다.

자작나무의 사계



https://youtu.be/tsc1LS2MI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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