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밥상

by 여름지이

첫 번째 비엔비에서 이틀 밤을 자고 본격적으로 밥을 해 먹기 위한 숙소로 옮겼다. 다른 유학생이 단기로 내놓은 방인데 부엌이 독립된 공간이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알맞았다. 거기다 뮌헨 최고의 관광지이자 구시가지 중심인 마리엔 광장과 쇼핑거리, 상시 재래시장인 빅투알렌, 마트까지 근처에 있다. 여행자와 생활인, 두 가지 모습으로 머무르기에 꽤 괜찮은 위치다. 그러나 우리 밥상을 위한 식재료는 이곳에서만 구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아시안 마트로 도와 함께 갔다. 생각보다 다양하진 않았으나 필요한 몇 가지를 사들고 돌아오며 일반 마트도 들르고 재래시장도 기웃거려 본다. 이사? 도 했지 시장도 봤지, 저질체력 모자는 헉헉 거린다. 새로운 곳에서 밥 한 끼를 준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구나, 별 탈 없이 굴러가는 일상의 위대함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도는 이제부터 저녁을 먹으로 오기로 하고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혼자가 되자 썰렁한 공간이 구석구석 보인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무실 건물, 창가에 놓인 키 작은 관엽식물들, 그 아래 회색빛 라지에이터, 숫자를 조심스럽게 2에서 3으로 돌렸다. 방 주인이 2를 유지하라고 했지만, 그런다고 금방 따듯해지지도 않겠지만, 금방 온기가 올라오는 온돌문화에 익숙한 사람의 습성이다. 사실은 주변에 기대어 마음의 온기도 어서 돌기를 바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힘없이 누워 바라본 창밖에 어둠의 습기가 어른거리자 정말 밥을 해보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라지에이터가 있었는데 며칠 후에야 발견했다. 다양한 그릇류에 비해 조리하는데 필요한 주방 도구는 식칼, 작은 프라이팬, 뚜껑 없는 또 작은 냄비, 양념은 달랑 소금 하나. 기숙사에서 윅이랑 양념류를 가져오기 전이라 일단은 이것만으로 무엇이든 만들어야 한다. 살짝 난감했지만, 냄비가 하나이니 그럼 먼저 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오랫동안 밥을 해 먹어 온 경험으로 행동은 어렵지 않다. 여열을 이용할 수 있는 전기레인지 덕분에 오히려 냄비밥이 쉽게 퍼졌다. 다싯물이 없는 된장국은 다양한 양념류 채소를 잔뜩 넣어본다. 먹을만하다. 밥과 된장국 두 가지가 완성되자 썰렁했던 부엌은 온기가, 소심했던 요리사는 의욕이 점점 살아난다. 부추와 새우, 먹어본 적 없는 소스도 사 온게 있다. 두 가지 전이 완성되었고 채소류는 만만한 샐러드가 되었다. 그리고 가져간 김부각까지, 그 사이 돌아온 도가 한 가지씩 방에 있는 책상 겸 식탁에 옮겨놓고 보니 그럭저럭 밥상이 차려졌다.


뮌헨에서 만난 지 삼일 만에 차린 밥상을 앞에 놓고 우리 모자는 따로 똑같은 감정으로 잠시 감격했다. 함께 살던 곳이 아닌 이렇게 먼 곳에서 집밥을 사랑하는 이와 먹을 때의 편안함은 같을 것이고, 도는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이 나는 여독으로 인한 우울감이 눈 녹듯 녹아내릴 준비를 한 것이다. 하얀 쌀밥과 떠나온 집에서 먹던 익숙하고 간이 맞는 반찬이 있는 저녁식사는 맛있고 푸근했다. 온갖데서 듣고 보아온 음식이 주는 위로, 이제야 온 마음으로 느껴본다. 정말 그런가? 잊고 또 잊으며 언제나 새로운 건 아닌지. 이런들 저런들 둘 다 온 데가 녹아내린 듯 흡족한 마음이 되어 내일을 이야기했다.

감격의 첫끼
이후로 계속된 짠내 나는 집밥들, 갈수록 감흥은 덜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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