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하기 시작하면서 기분도 기운도 올라왔다. 교회 종소리,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숙소를 나와 한 블록만 올라가면 구시가지로 연결되는 북적거리는 거리가 나온다. 사람들 인파에 섞여 멋진 가계가 즐비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풍스러운 시청 청사 시계탑이 있는 마리엔 광장이 나온다. 시계탑 인형이 공연을 하는 오전 11시가 되면 사람들은 더 모여들고 축제 분위기가 연출된다. 실제로 그 동네에 머무는 동안 무슨 축제가 열려 각양각색의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런 분위기, 지갑을 열게 하는 온갖 테마가 있는 화려한 가게들, 오래된 건물들의 향연 등 유럽 여행자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이 이번엔 왠지 시큰둥하다. 좋아하는 시계탑 공연도 딱 한 번으로 족했다. 아름다운 프라우엔 교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뮌헨 시내 전경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저 한적한 골목으로 눈길이 자주 가고 여름이 보이는 아름드리나무 앞에 설 때 제일 편안했다. 감정기복이 선명하고 다수가 열광하는데 시큰둥한(척?) 갱**는 사춘기를 꼭 닮았다.
대신 근처 시장에 자주 들락거렸다. 빅투알리엔 마켓이라고 처음에는 관광지에 있는 고만고만한 시장이라 생각했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독일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200년이 넘는 전통시장으로. 사람을 만나고 물건도 구경하고 이방인이 현지 생활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이다. 결국 꽃집 앞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곳은 식재료와 먹거리가 풍성한 곳이었다. 나름 전통과 개성을 드러낸 온갖 종류의 식료품 가게들이 오두막처럼 곳곳에 즐비하다. 눈이 즐겁고 맛도 즐거울 수 있겠지만 입맛이 유연하지 못한 이방인은 마냥 그렇지만 않다. 먹음직스러워 보여 하나 사볼까, 선물로 하나 사갈까 싶다가도 또 뒷전이 될 거란 걸 알기에 선뜻 지갑이 열어지지 않았다. 필요해서 산 것은 노르웨이에서 온 것 같은 홍합과 구이용 닭 그리고 세계인의 맛 커피!
기꺼이 한 잔 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호불호가 있을 리 없는 대중적인 커피맛, 집에서 내려 먹는 연한 커피맛이라 반가웠다. 젊어 보이는 남자 여럿이 직접 로스팅하고 꽤 분주하여 인기 있어 보이는 시장 카페였다. 테마도 변변한 자리도 없는 카페, 오롯이 커피만을 위한 카페, 오전마다 달려와 지갑을 열었다.
커피만큼 익숙한 걸 하나 더 찾았다.
빅투알리엔 마켓을 가다가 발견한 도넛츠가 아닌 도나스 카페. 그 거리에서 제일 근사해 보여 눈길을 끌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국민간식인 꽈배기 도나스 같은 걸 팔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다른 맛을 기대하고 들어가 봤지만 동그란 모양에 팥이 아니라 과일잼이 들어간 것 말고는 설탕 묻혀 먹는 것까지 닮았다.
도나스를 즐겨 먹은 세대는 도넛츠가 나오기 전 세대다. 그래서인지 방문한 아침 시간대에 노인분들이 자리를 한 자리씩 차지하고 커피 혹은 갓짠 오렌지 쥬스랑 이것을 손에 쥐고 오물모물 잡숫고 계셨다. 먹고 사가고, 우리를 뺀 나머지 손님들은 모두 직원들과 격의 없이 말하는 게 오래된 동네 맛집임을 알려준다.
또 하나 발견한 익숙한 곳은 헌책방이다.
숙소에서 가까운 마리엔 광장쪽으로 걷다가 들어온 단어 oxfam, seconhand, charity shop. 국제 빈민구호단체인 옥스팜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이었다. 동네책방은 여행지에서 이젠 필수코스가 된지라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매장에서 일하는 나이든 독일 여성들의 화사한 모습과 친절이 인상적이었다. 언어가 달라도 왠지 할머니들은 말붙이기 편하다. 편하면 말이 또 잘 이어지지 않던가! 몇마디 주고받으며 그림만 봐도 내용을 알것같은 그림책 두권과 보물같은 에리히케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이 보여 냉큼 골랐다. 중고지만 새책처럼 깨끗하고 저렴하기까지 하니 횡재한 기분으로 책방을 나왔다.
다른 나라에 와서 익숙한 것만 찾고 안도감을 느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