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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r 15. 2024

왜가리

지브리애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파편들 1


근래에 동네 작은 영화관을 갔었지만, 도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는 무척 오랜만이다. 그리고 대형 영화관에 밀실처럼 작은 상영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0년 만에 돌아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 소식을 뒤늦게 접했고, 당연히 ott에 있겠지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마침내 메이저 영화관에서 아직도 상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종료 하루 전이라 가슴이 콩닥거리며 예매했다.

아, 찾아간 마천루 빌딩의 지하 영화관은 복잡한 미로의 세계였고, 내가 볼 영화의 상영관은 또 그 속의 다른 세계였다. 인기 없는 연극을 하는 작은 소극장처럼 작고 한산하여 상영시간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나를 포함한 세 사람만이 말없이 앉아 있다. 스텝도 없고.. 잘못 들어왔나 살짝 의심 중 상영시간이 임박하자 그나마 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영화가 시작되면 불은 당연히 꺼지겠지만, 바깥 비상구 불빛이 환히 들어오는 입구 커튼을 누가 정리하나, 불안했다. 예상은 맞아 불이 꺼지고 화면이 나타나도 열린 입구는 그대로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야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온전히 영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공교롭게 내가 입구와 가장 가까운 가생이 자리, 안 되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 커튼을 조용히 쳤다. 살짝 묘한 기분이 들었던 건 영화 속 왜가리처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무척 오랜만에 설렘을 갖고 산 넘고 물 건너 영화관을 찾았다가, 실타래가 엉킨 막막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지브리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 <토토로>처럼 그냥 보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영화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거장이 되어갈수록 하야오 씨의 세계는 온갖 은유로 커튼 뒤의 세상을 밝히고 변주하여 달콤하지만은 않다. 부지런히 따라간 이들은 뚝뚝 끊어지는 것 같은 이번 영화에 촘촘히 엮어 놓은 투명한 줄을 보았을 것이고, 사실은 그의 세계를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은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전작 <바람이 분다>에서 부터 슬슬 꺼내놓기 시작한 하야오 본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잘 모르겠는데 여운이 퍽 남아 다시 읽게되는 단편소설처럼 어설프게라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나 장면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보려 한다. 은퇴를 번복하는 고령의 거장이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7년(보통 3년 정도라 함) 넘게 혼신을 다해 그토록 하고싶었던 이야기, 그냥 보내기에 아깝다.

그런데 거장이 왜 신중하지 못하게 은퇴를 번복하고 있을까. 영화 제작일지겸 하야오 씨를 조명하는 다큐를 찾아보며 엉뚱하게도 더 노인인 시아버지가 떠올랐다. 90세가 되어도 옛 방식을 고수하며 제사를 관장하는 역할을 놓지 못하여 아내 자식들에게 큰 원성을 사자, 죽을 때까지 지낼 거라는 선언과 고백을 하고만 시아버지. 고백의 내용을 꼽씹으면 시아버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연민이 간다. 장자로서 삶에 신앙이 된 제사를 그만두면 더 이상 자기가 아니라는데, 죽는 거나 마찬가지라는데,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로 설득할 수 있을까. 가부장 신화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그는 제사가 곧 자기 자신이었다. 실질적인 노동에 몸서리치는 여자들의 불평 같은 건 그의 이기적인 진심 앞에서 힘을 잃고 말았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야오씨의 예술을 어찌 평범한 이의 그것과 비유할까만 평생 집념을 불태운 일은 나이, 늙음이 걸림돌이 되지않는다는 건 다르지 않다. 어쩌면 위기감이 올수록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실행 욕구는 더 강렬한지도. 그럼에도 체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어 한 작품이 끝나면 다시는 못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일까. 하야오씨에게 은퇴선언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도 진심이리라. 덕분에 팬들은 기다림을 멈추지 않아도 되고, 오랜 시간 뜸을 들여 나온 작품이 반갑고 귀하다.

첫번째, 이야기의 파편은  왜가리다. 주인공 '마히토'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매개자이자 끝까지 함께하는 조력자 역할이다. 전쟁으로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불이나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어머니를 잃은 마히토는 마음 둘 곳 없는 죄책감까지 있는 외로운 소년이다. 일본의 옛 풍습이라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아내의 동생, 그니까 마히토 이모랑 재혼을 하더라. 새로운 가족이 된 그들은 전쟁을 피해 도시를 떠나 어머니 고향집에 정착하게 되는데, 웅장하고 고풍스런 집에 첫발을 들인  날 푸른 깃털이 섞인 왜가리 한 마리가 마히토 주변을 배회한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래된 별채 탑이 있는 건물로 들어갈 임자를 만났다는 듯. 그 탑은 수많은 모험이 펼쳐진 하야오씨의 거대한 애니세계 곧 자신의 삶을 은유한 성이리니. 다큐에서 알았다. 왜가리의 실재 모델이 지브리의 오래된 조력자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라는 걸. 영화는 곧 현실이었다. 이제 그들, 마히토와 왜가리의 모험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다.

 

물길이 많은 곳에 살며 왜가리과인 백로들을 일상에서 자주 본다. 눈길로 백로를 좇는 일에는 지루함이 없다. 관찰자에게 보이는 그들의 생태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우린 먹이만을 위해 살아, 가끔 배가 부르면 그냥 바라보지. 내 앞에서 반짝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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