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영 Feb 15. 2021

꽃과 시, 노래 그리고 아기

색다른 전쟁영화  <1917>


1917년 4월 6일, 1차대전 어느 전쟁터.


병사들이 쉬고 있는 들판엔 야생꽃들이 가득이다. 1600명의 아군과 친형의 목숨이 달려있는 편지를 다음날 아침까지 다른 부대에 전해야 되는 임무를 맡은 두 병사가 있다.


그들의 험난한 길에서 만난

비록 베어져 있는 나무 가지 하얀 체리꽃은 눈부시다. 어머니와 과수원을 하던 고향을 떠올린다.

세상을 다 집어삼킬듯 난폭한 폭포 아래 잠잠한 냇가엔 하얀 꽃비가 내리고 있다.

전장에 살아남은 아기에게 병사는 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체를 타고 바다로 갔다

체를 타고 바다로 갔다

아무리 친구들이 말려도

겨울 아침 눈보라가 몰아쳐도

체를 타고 바다로 갔다

저 멀리, 저 멀리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머리는 초록색 손은 파란색

그들은 체를 타고 바다로 갔다


친구를 잃고 천신만고 끝에 닿은 숲 속 어디에선 노랫소리가 들린다.

부대병사들인 듯 모두 넋을 놓고 석고상처럼 꼼짝없이 동료 병사의 노래를 듣고 있다. 소리에 이끌려 온 병사도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 앉는다.


나는 가여운 나그네

이 슬픈 세상을 유랑하며

병도 죽음도 없는

그 밝은 곳으로 나는 떠나네

아버지를 보러 집으로 가네

방황이 그칠 그곳

요단강을 건너

그저 집으로 가네

먹구름 몰려들어

험하고 가파른 길이지만

황금들판 앞에 펼쳐진

주님의 구원이 잠드는 곳으로

어머니를 보러 집으로 가네

내 사랑하는 이들을 보러

요단강을 건너

그저 집으로 가네

나는 가여운 나그네

이 슬픈 세상을 유랑하며

병도 죽음도 없는

그 밝은 곳으로 나는 떠나네


노랫소리는 너무도 맑고 아름다워 잠시 전쟁의 시름을 잊게 하고 지친 병사들을 먼 고향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들은 편지가 닿아야 할 데번셔 중대 병사들이었다.


전쟁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장면들이 많아 빨려 들었다. 채 24시간도 되지 않을 1박 2일의 시간을 카메라는 두 주인공을 따라 화면 전환 없이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원테이크 촬영법이라는데 관객은 화면 속 시간을 함께하는 듯 몰입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의 시간이 선형적이라는 건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매우 밀도 있어 그 상황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이 기절한 시간만큼 우리도 깜깜한 장면을 보고 있어야 하다니! 단순함의 미학이랄까. 오래된 미래처럼 사실은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으나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황한 스토리에 익숙해져 버린 요즘, 이런 시도가 신선함으로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전쟁 영화답지 않은 감성을 건드리는 설정은 전쟁의 참혹함에서 더 나아가 전쟁의 본질을 묻는 듯하다. 전쟁은 싸우고 이기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는 거라고.  누군가는 상황 때문에 전쟁터에 내몰린 병사들의 허무한 죽음을 막기 위해 보이지 않는 눈으로 공중을 뛰어야 , 폐허가 된 전장에 살아있음이 기적인 여인과 아기를 위해 구호품과 우유를 망설임 없이 내놓았다.


밝음이 어둠을 더 잘 느끼게 하는 것처럼 때가되면 어김없이 피는 체리꽃과 아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숲 속의 노랫소리는 전쟁이 얼마나 허망하고 허무한 일인지 알려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기 어딘가 블랙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