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에/ 시공주니어, 2007
다시 읽는 책에서는 지나온 시간과 지금이 만난다.
이 분, 에리히 케스트너처럼 생각하는 어떤 이를 알고 있다. 난 그분에게 홀딱 반해 언저리에 살며 기운을 얻었었다. 어려운 시기였기에 마음을 키워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분의 활동과 생각은 당시의 그런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난 살았다.
이 책을 다시 읽으니 그분의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울림은 있었으나 명확하지 않았던 그때 오고 갔던 말들이 이제야 다가오는 듯하다.
에리히 캐스트너(1899~1974)는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어린이책 작가이다. 이 책은 동화로 엮은 자서전이라고 할까. 5학년 이상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50이 훨씬 넘은 이가 읽어도, 읽으니 더 새록새록 와닿는, 어린이와 어린이가 아닌 사람이 독자가 될 수 있다.
작가라면 자기 이야기를 여러 형식을 빌어 책으로 엮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의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래픽노블 <에델과 어니스트>, 대중에게 다가간 사회학자 노명우의 <인생극장>, 이 두 권도 비슷한 느낌으로 빠져들며 봤다.
이 책들의 말, 앞서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삶 자체로 어떤 종교의 말보다 삶이 불안한 이에게 도움이 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보여주니 절망과 희망이 나란하다. 스쿠르지 영감처럼 보고 나니 일시적일지라도 심경의 변화가 조금 생긴다. 근본은 바뀌지 않아도(근본이 바뀌려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되고 싶은 모습으로 그런 척이라도 할 수 있는. 누군가는 이것을 성장이라 했으나 자주 원래로 돌아오는 오류는 있다. 그럼에도 제자리와 나아간 자리를 구분하게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다시 읽으며 '여전히' 그리고 '이제야' 멈추게 되는 문장들을 적어 보았다. 알록달록한 세상의 일, 엄밀하게는 사람의 일을 바라보는 이분의 통찰이 승화된 위트와 유머는 나이만 먹고 싶지 않은 이에게 위로와 공감, 자존감까지 살짝 올려준다. 자존감은 남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정하는 마음이므로 철저히 혼자인 읽기와 쓰기로 너와 내가 밝아지는 일이 있을 때, 그 쉽지 않은 자존감이 잠깐이지만 올라가는 묘기를 부려준다.
*외삼촌은 폭군이자 전제 군주, 말을 탄 나폴레옹이었다.
그리고 사실 멋진 인물이었다.
아무도 외삼촌의 말에 강력하게 반대하지 못한 게 외삼촌의 책임은 아니었다.
누군가 외삼촌에게 자기 의견을 똑바로 말했다면, 외삼촌은 무척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평생 동안 그런 사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P102
역으로 말하면 멋지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 반대 의견을 똑바로 말하면 분란만 일어나고 관계가 일그러지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꾹 참고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간다.
의견 말하기를 포기하는 게 무지 힘든 사람이 있기는 하다. 외삼촌이 그런 사람을 정말 기다렸을까.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유죄인 것 같다.
*나는 선생이 아니라 학생이었다.
나는 가르치기보다는 배우고 싶었다.
되도록 오래 학생이고 싶어서 선생이 되려고 했다.
새로운 것,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싶었지, 낡은 것, 낡은 것만을 계속해서 전달하긴 정말 싫었다.
굶주린다고 빵 장수가 될 순 없었다. 지식에 목말랐지만 술집 주인은 아니었다.
당장 조급하고 불안하긴 해도, 나는 미래의 교육자 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선생이나 교육자는 침착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돌보는 대신에 아이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참을성과 편안함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자기 몸 하나 편하자고 선생이 된 사람들은 이미 많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는 선생들은 영웅이나 성자만큼 드물다. P105
그때나 지금이나 안정적이고자 교직을 선택하는 사정은 비슷한가 보다.
요즘 뉴스를 보면 더 이상 교직이 편하고 안정적인 시대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이들이 남고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교사가 될뻔했던 사람으로서 이 분의 말을 들으니, 난 했어도 곧 그만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내심 없어 자신을 돌보는데만 능한 사람이니까.
*우리가 지나온 세월은 깍지 낀 손가락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P108
그렇지, 나무 잔가지 같은 우리 인생사!
*나는 체조를 하면 즐거웠기 때문에 체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체조를 했다. 그러나 영웅이 되려는 것도, 영웅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영웅이 되지도 않았다. 가짜 영웅도, 진짜 영웅도 되지 않았다. 그 차이를 알겠는가?
가짜 영웅에겐 상상력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다. 그들은 어리석고 둔하다.
진짜 영웅은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한다. P116
가짜 영웅이 판치는 시대, 상상력이 특별하지 않은 이에게도 두려움을 일으키는 그들, 어리석고 둔한 그들.
*육체는 정신처럼 되고 싶어 한다. 육체와 정신은, 마치 건강한 쌍둥이가 똑같이 자라고 똑같이 힘을 키우려는 것처럼, 앞다투어 성장하려고 한다. P116
균형 맞추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이가 드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둘 다 힘들어져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문자생활과 몸쓰기. 두 가지는 알아서 서로 앞서고 뒤서고 한다.
*나는 약속을 지나치게 많이 하기보다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지킨다. P126~127
약속에 진심을 담으면 많은 약속을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읽기를 배우고 독서를 즐기게 되면, 제2의 세계, 즉 문자의 세계를 발견하고 정복하게 된다.
독서의 세계는 신비하고 끝없는 대륙이다.
인쇄된 검은 잉크에서 사물, 인간, 정신, 그리고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신들이 생겨난다. P127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신들, 에리히 나는 당신의 말들이 그렇소!
살아있는 동안 계속 신을 만나길 바랄 뿐이다.
*어른들도 자기가 읽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오로지 이해하는 것만 읽는다면 인쇄업자나 신문사의 식자공은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 P128
숨을 쉬듯이 책을 읽었다는 어린 에리히, 이해 못 하는 건 읽지 말라는 어머니 말에 대한 반론.
*난 혀끝을 깨물고 말았다. 메디치날라트이자 주치의인, 팔자수염을 기른 친절한 침머만 선생도 처음에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없었다. 혀가 퉁퉁 부어올라서 커다란 경단처럼 입 안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끔찍하게 아팠고, 정말로 아무 맛도 없는 경단이었다! 침머만 선생은 혀는 말하고 먹고 마시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근육이라서 상처를 꿰매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혀를 꿰매다니! 부모님과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그리고 침머만 선생도 기분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침머만 선생은 내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고, 바늘과 실로 내 혀를 꿰매느니 차라리 자기 혀를 꿰매고 싶었을 것이다. 우선은 침대에서 쉬면서 카밀레(국화과의 한해살이 풀로, 꽃을 말려서 진통제로 쓴다:옮긴이) 차를 마시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그날 밤은 즐겁지 못한 밤이 되었다. 입 안에는 차가 열 방울도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삼킬 수도 없었다. P132~133
혀를 깨물고 죽는다는 말이 있더니만, 정말 혀를 깨문다는 건 흔히 보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일인 것 같다. 그런데도 읽는 이를 큭큭하게 만드는 이 분의 유머 감각, 정말 못 말리겠다.
*우리들은 금요일에 가기를 좋아했다. 그날은 피 순대와 간 순대를 새로 익히고 반죽하는 날이었고, 우리는 전문가로서 맛을 보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의 전문성은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따뜻한 마늘 순대' 같은 특수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돈다. 그러나 그래도 아무 소용없다. 이제 따뜻한 마늘 순대는 없다. 사라져 버렸다. 작센 지방에서조차도. 어렸을 때의 푸주술 마이스터들이 자기들 관 안에 요리 비법도 함께 묻어 달라고 했던 걸까? 그랬다면 엄청난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입안에 침이 고인다. 추억의 맛만큼 맛있는 것이 또 있을까.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맛이라 더 그럴 것이다. 똑같이 만들어 지금 먹는다 해도 그때의 맛은 아닐 것이다. 누가 변한 들 상관없다. 모든 것은 변할 것이기에. 피 순대는 나의 어릴 적 음식이기도 한데.. 따뜻한 마늘 순대?, 이것은 지금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극장 하나는 ‘자연 극장’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숲 한가운데다 색칠한 널빤지로 높은 울타리를 친 노천 극장이었다.
그곳에선 일주일에 세 번씩 오후에 공연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반원 모양의 벤치에 앉아 동화 구연, 서민극, 희극, 즉흥 익살극 따위를 재미있게 구경했다.
솔잎 향기가 났다.
개미들이 양말 위로 기어 올라왔다.
울타리 밖에 선 손님들은 울타리 안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여름은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렸다.
때로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 우리는 걱정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간혹 멀리서 천둥이 울리면 배우들은 이 불손한, 그리고 점점 커 가는 경쟁자에 대항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때엔 구름이 갈라지고 번개가 번쩍이다가 마지막 막에서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도망쳤다.
배우들도 우리와 함께 도망쳤는데, 의상만은 조심스레 다루었다.
자연이 예술을 이겼다.
우리는 외투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폭풍우에 나무줄기가 휘었다.
나는 어머니 품에 파고들어 심술궂은 하늘이 빼앗아 간 연극의 마지막 막을 상상해 보려고 애쓰다가 점점 더 축축해지곤 했다.
책방에서 연극하던 때가 생각난다. 자연 극장에 가까운 구름빵(장소이름)과 구름빵의 관객들, 그 사이의 동백나무, 그분이 꿈꾸던 생활연극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까. 지금의 나라면 좀 더 진지하게 연극에 참여하고 즐겼을 텐데.. 아쉽지만 모두 지난 일. 왜 모든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장밋빛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인다. 멋진 광경이겠지만 그래 봐야 눈속임일 뿐이다.
그건 세상 덕분이 아니라 안경 덕분이다.
그것을 혼돈하고 있는 사람은, 삶이 자기의 코에 걸쳐져 있는 안경을 벗기면 놀라게 된다.
안경을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작가나 철학자처럼 사람들에게 검은 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파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지구는 근심의 골짜기이자 희망도 없는 암담한 별이 된다. 햇빛이 지나치게 눈에 들어가지 않게 검은색 안경을 사라고 권하는 사람은 착한 장사꾼이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지 않는다고 믿게 하려고 우리에게 그런 안경을 씌우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세상은 장밋빛이나 검은색만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경 쓰는 걸로 세상 보기를 말하다니, 참 탁월한 비유이다. 책을 읽는 이유가 햇빛이 지나치게 눈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거,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그러할 것이다. 알록달록한 세상은 누구나 적응하기 쉽지 않다.
*그들은 자기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남 생각은 더욱 안 했다.
자기가 보여야 남도 보인다는 의미 일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아마도 한 아버지가 자식을 열둘 먹여 살리는 것이 자식 열둘이 한 아버지를 먹여 살리는 것보다 쉽다는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 이 말은 날이 갈수록 현실이다. 부모와 자식 중간에 끼인 세대로서. 그래서 사람에게는 '치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가. 마음을 내어야 할 수 있는 사랑.
*레만 선생은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영리한 사람이었고, 우리를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영리한 학생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 목표는 훌륭했다. 그러나 목표에 이르는 방법은 끔찍했다.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영리한 사람이 항상 좋은 사람은 아닌데다가, 레만 선생은 선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레만 선생에게는 교육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인 인내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관심과 일맥 상통하는, 늘 하던 대로 평범하게만 행동하는 인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심과 유머와 끈기에서 나오는 참된 인내를 말하는 것이다. 레만 선생은 교사가 아니라 권총과 채찍을 든 맹수 조련사였다. 교실을 맹수 우리로 만들어 버렸다.
조금 앞선 세대로부터 특히 남학교의 살벌했던 교실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리고 그건 일제시대 잔재라고들 하던데, 그때 서양 독일의 교실풍경도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특징일까.
이 레만 선생과 에리히가 어쩌다 단둘이 '돌로미텔'이란 곳에서 암벽등반을 하게 된 날, 그로부터 이런 고백을 듣게 된다.
"난 아주 쓸모 있는 가정교사가 되었을 거다. 애들 네뎃 명의 가정교사이자 여행 안내자였다면 말이다. 그런 일이라면 잘해 냈을 거야. 하지만 서른 명이라니, 스물다섯 명이 넘쳐."
마치 학생이 너무 많아 폭력 교사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분으로부터 군대와 학교는 같은 카테고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군대와 내 귀여운 아이가 다니는 곳이 닮은 장소라니. 획일화되어 개인이 존중되기 어려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세상은 변하여.. 요즘 학교 사정은 또 기이하게 많이 달라졌다.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고 무기력한 국민, 레만 선생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고뇌가 다가온다. 이 챕터의 제목은 '두 얼굴을 가진 레만 선생'이다.
*말들은 사람과 비슷한 병을 앓는다. 감기나 장염처럼 우리가 앓는 병과 이름이 같은 병들도 많고, 비저병, 말 습진, 마비저, 비절내종이니 하는 이름이 다른 것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아주 치명적인 병들이었다. 우리는 기침이나 콧물, 목의 통증, 볼거리, 복통 따위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채식주의자였던 말들에게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증세였다. 너무 축축한 건초를 먹으면 금세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몸에 칼질을 하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되며, 그러다 장이 꼬이기라도 하면 죽음이 마구간 문을 두드린다.
한때는 사람에게 중요했던 말. 초식동물의 예민함과 의외로 과격함에 대한 글을 읽은적 있고, 병든 말이 나오는 이야기 등, 위의 문장은 보충 설명 같아 말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햇빛에 그을려 갈색이 된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는 저 두 사람은 누구일까? 마이스터가 되려고 여행을 떠난 레어링처럼, 물통을 들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 저 두 사람은? 언덕과 골짜기를 누비며,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때우고 후식 삼아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는 저 두 사람은? 비바람이 치면 망토와 우비를 꺼내 입고 지치지도 않은지 고집스럽게 숲 속을 돌아다니는 저 두 사람은? 저녁이면 여관 식탁에서 따뜻한 수프를 먹고 곧이어 색색의 바둑판무늬 침대보가 씌워진 농가의 침대에 지쳐 스러져 버리는 저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했던 어머니와의 도보여행을 위트 있게 묘사한 문장이다.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에게 어머니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아들들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외아들로서 그의 애환은 참 눈물겹더라. 특히 가장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날에.
타고난 작가의 근원에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기발하고 대범한.. 그의 엄마가 있었다. 아들만의 엄마로서, 성인이 되어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기 시작한 아들들을 지켜 볼때라 여러 생각이 일었다.
생각을 일으키는 문장이 넘치지만 여기 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