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국: 제사장에 놓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 - <어학 사전>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에는 나이 50도 안돼 늙은 엄마집에 기어들어와 삼시 세끼 밥을 얻어먹는 고학력 아들들을 향한 엄마의 밥상머리 절규가 있다. 그 어렵다는 대학 삼 형제가 줄줄이 턱턱 붙을 땐 남들 못 낳는 아들 나만 셋씩이나 낳은 줄 알고 행여 남들 시기질투에 자식새끼들 될 일도 안될까 봐 잘난 척 안 하려고 무진장 애썼는데, 이 고학력 빙신들!, 이라는.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대사가 생각난 건, 분명 예년과 달랐던 명절 휴유증이 아니라 '여운'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기이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힘듬을 넘어 지루해지기까지 했던 명절 모습에 변화가 생겼고 익숙하고도 새로운 상황은 꼭 삼 형제 엄마처럼 복이 날아갈까 봐 사리는 마음을 불러왔다. 시부모님 주도 하에 제사를 도우는 입장이 아니라 물려받아 단독으로 지내는 상황을, 일이 사분의 삼이나 줄었다는 정도로 주변에 첫제사 소감을 말했지만, 그것은 무진장 애쓴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일만 줄은 것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 일은 마치 뻐꾸기 탁란의 이유를 설명하는 일과 같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여러 추정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가 없는, 자연의 일 말이다. 어느 가정사는 오직 그 가족 구성원들의 내밀한 일이기에 여느 가정과 서로 교집합은 있으나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여 나의 제사 독립은 일반적이지 않아 그 유일무이한 상황과 기분을 구구절절 적을 수는 없다. 다만 날아갈까 봐 내보이기 두려운걸 굳이 표현한다면 대학합격이나 복권당첨 같은 것이 아닌 제사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며칠째 탕국을 질려하지 않고 매일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다른 식구들은 이제 숟가락도 대지 않는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그 탕국을. 제사 파젯날 피곤에 절어 돌아가는 며느리에게 한 들통 안긴 탕국은 제사라는 거룩한 일의 (조금 섬찟하지만) 확인사살 같은 것이었다. 너는 제사를 지냈어!! 건더기반 국반 끓이고 끓이다 끝내 천덕꾸러기가 되어 냉장고 자리만 차지하나 버리지 못해 꾸역 먹어야 했던 그 탕국을. 잔뜩 남은 건더기를 한 조각도 안 버리고 먹어치우는 시어머니의 ‘이게 알마나 보양식인데 ‘라는 그때의 표정까지는 아닐지라도 거부감 없이 혼자서 먹고 있다. 정말 푹 익은 건더기가 부드러워 든든하게 속이 편안하다. 그래, 알게 되면 사랑? 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담아 재료를 사고 직접 끓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자.
그 외에도 비록 어른들 규모에 비하면 약식에 가까웠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데자뷔 같은 게 일어나 흠칫 놀라며 절망 아닌 절망감 같은 게 들기도 했다. B급 며느리가 그렇게 구시렁거리고 이해하지 못했던 시어머니의 패턴이 된 행동들. 이를테면 음식 가짓수 자꾸 늘이기, 부치고 볶는 중에 웬 빨래 삶기, 제사상에 대고 하는 기도의 말. 변명을 하자면 아예 시도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제사라는 같은 목표가 있을 때 30년을 함께한 나에게 그려지는 이미지는 결국 시어머니의 모습, 그 나물에 그 밥 일수 밖에. 적으나 식구들이 모였고 날씨는 궂어 수건이 삽시간에 동이 나니 삶는 빨래라고 안 할 수 없다.
숭배나 기복 같은 올가미에도 걸렸나? 병풍을 세우고, 음식을 차려 놓고,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이니.. 마지막에 절로 말이 나왔다. 본가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조상님들이었으나, 주체가 되고 보니 그리 되었다. 정말 그분들에게 한 말이었을까. 조상님, 이쪽으로 드나드시는 분이라면 달라진 세상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간소하게 차립니다. 자손들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때가 되면 오셔서 맛있게 잡수고 편히 계시다 가십시오.
내용은 달라야 했다. 힘겨웠을 이 세상을 살아내고 떠난 그분들에게 죽어서까지 핏줄을 돌봐야 된다는 숙제를 요구하는 자손은 너무 이기적인것 아닌가. 행여 이승에 미련이 남아 오시는 분들이라면 먼 길 온 그들에게 세속적인 복을 구할게 아니라 추억의 음식을 나누고 휴식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집에 온 손님대접, 손님은 머무른 집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무례하지 않은 분이라면. 저쪽은 저쪽, 이쪽은 이쪽.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할 때 평안이 온다.
큰며느리가 전통적인 역할을 함으로서 세명의 여자들이 제사로부터 놓여놨다. 시어머니, 동서 둘, 명절뿐만 아니라 기제사에도오지 않는게 좋겠다 했다. 서로 그 일이 수월해지는 최적의 방법이다.
몸이 불편한 아랫 동서가 그동안 제일 애썼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결혼해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는 개근을 혼자 한 사람. 분주한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이 더 고역이었을 텐데, 이 사람은 묵묵히 가족 된 도리를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하려(아마) 제사에 꼭 참여했다. 무던한 성격이라 누군가에 대한 싫은 소리나 내색을 잘하지 않는 그녀가 한 번은 어른들 때문에 힘들었는지 이런 말을 했다. 형님, 우리는 어른이 될 수가 없습니더. 그 말의 의미를 동서와 난 '우리'라서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장성하고도 여전히 자식 모드였던 우리에게, 병이나 죽음 아니고서는 승계되지 않을 것 같았던 제사라는 게 와, 이제 모양새는 어른에 가까이 갔다.
동서, 근데 말이야, 어른이 되니 그 어른들이 우리한테 다 들어있더라고. 여기저기서 나와. 성공하셨어!.. 웃기고 슬프지. 애들한테는 우리가 또 들어있겠지? 어쩔 수 없나 봐.. 그러면.. 어쩌겠어.
그런데 좋아, 그걸 딱 바라보며 비트는 재미가 있더라고 하하! 아, 이렇게 가벼운 명절은 31년 만에 처음이야! 우리 이제 조금씩 날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