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팔꽃!
길가다 나팔꽃 씨앗 꼬투리만 보이면 무조건 털어 호주머니에 넣어온다. 이듬해 봄에 마당에 뿌리기도 화분에 뿌리기도 한다. 올해는 아파트에 사니 베란다에 있는 제법 긴 가지가 있는 꽃기린 화분에 흩어놨다. 마땅히 덩굴이 올라갈 만한 장소가 없어 꽃기린한텐 무지 미안하지만, 그렇게 했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도 부지런히 덩굴을 실 자아내듯 뽑아내더니 얼마 전부터 하루에 두세 송이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일생으로 살고 나팔꽃은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아침 시간을 잠깐 산다. 꽃봉오리가 장우산 접어놓은 것처럼 뾰족하게 돌돌 말린 것도, 아침의 영광이라는 영어명도, 기쁜 소식이라는 꽃말도 근사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올 것이 온 듯 선선해진 아침이 되었다. 그러면 야생 나팔꽃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눈곱만 떼고 평소답지 않은 부지런을 떨어 요즘 같은 회색빛 시간들 어딘가에 무심히 존재하는 아침의 영광을 만나러 나섰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집 꽃들의 형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산책길 나팔꽃 덩쿨지로.
역시, 당신들 시간을 잊지 않았군요, 아침의 영광들!
이파리가 무성해 꽃이 많이 보이진 않지만 모진 장마와 태풍을 이기고 이렇게 곱게 피어 있었다.
반나절도 못 견디고 스러질 꽃이기에 더 아름답고 찬란한 걸까. 아침 기운을 화려한 색으로 뿜어내는 꽃들이 그렇게 보였다.
나팔꽃 사랑은 책으로도 이어진다. 일본 도쿄에 있는 어린이 전문 서점 크레용 하우스에서 산 그림책인데 일본말을 몰라도 이해가 되는 책을 고르다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팔꽃 기르기가 일상인 일본 생활 문화를 말해주는 듯 나팔꽃의 생태가 세밀화로 잘 그려져 있다. 집에서 나팔꽃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일본사는 지인의 글을 보고 나서다. 일본 동화나 소설에도 나팔꽃이 많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들의 나팔꽃 사랑은 어지간하다.
오래전 뉴스에서 본 100년을 살고 있는 나팔꽃에 관한 기사가 잊히지 않는다. 조부모가 젊었을 때 키운 나팔꽃 씨앗을 심고 심어 손자에게까지 전해진 이야기다. 야생의 세계 어딘가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나팔꽃을 귀하게 여기는 가족이 만든 마법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까만 씨앗을 꼬투리에서 받아 매년 심는 그 마음은 꽃말처럼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일 거라고, 나도 숟가락을 얹어 이야기를 만든다.
새들이 씨앗털이를 하는 것처럼 나팔꽃 씨앗털이 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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