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성서

by 푸르름


출처 : pixabay



추천곡 : 여섯 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성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두고 이 같은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곡은 기교면에서나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음악이다.



이 곡은 전 6개 파트로 구성되어 각 파트마다 독립된 형태의 곡 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제1모음곡의 프렐류드는 휴대폰 인기 벨소리로 대중적 지지도와 애정도가 높은 곡이기도 하다.


첼로 모음곡의 인기는 당대의 명연주자인 요요마와 미샤 마이스키 등 카잘스의 후배 첼리스트들에 의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색소폰 연주가인 야수 야키 시미주에 의해 색소폰 버전으로 연주되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금까지 셀 수 없는 연주자들이 다양한 악기로 음악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곡은 첼리스트들이 필생에 한 번쯤은 음반을 내보고 싶어 하는 로망과 같은 동기를 부여하는 첼로 음악의 성서(聖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곡과 파블로 카잘스(1876-1973)와의 인연은 음악사적으로나 애호가들에게도 너무나 극적이다. 마치 바흐가 처음부터 카잘스를 위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카잘스의 이 곡에 대한 해석이 "독보적일 만큼 탁월했다"라는 평에는 모든 이들이 동의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가 곡의 '완성자'란 칭호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렇다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관련해 카잘스가 특급대우를 받고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카잘스가 13세에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 재학 중일 때, 카페 토스트의 트리오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카잘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전 음악회 첼로 독주자로서 연주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바르셀로나 악기점에 악보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악기점의 구석에서 200년의 세월만큼이나 수북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작품 한 권을 발견하게 됐다.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이 작품의 원형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누구도 이 곡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 곡이 세상에서 사라져 묻혀 있었던 이유는 바흐가 부주의하여 스코어를 분실한 것도 아니고, 음악적 내용이 빈약해 사장된 것도 아니다. 바흐가 활동하던 시기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보면 단지 후원금을 주던 귀족이나 왕의 눈에 띄지 않는 한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헨델과 같이 후원금에 많이 의존했던 경우에는 일주일에 한 곡의 오라토리오를 만들어 왕의 귀를 즐겁게 해 줬는데 도저히 상상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마치 기계와 같이 곡을 써 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카잘스가 이 곡을 발견하고도 연주하기 너무 어렵고 흥미마저 잃어 자신의 다락방쯤에 던져 버려 놨다면, 오늘의 우리가 상상하기도 싫은 참극이 됐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곡의 스코어를 발견한 카잘스는 형언할 수 없는 매혹적인 신비에 감응됐고, 집념과 각고의 노력으로 곡을 연주하기 시작해 스코어를 발견한 지 10여 년을 넘기고서야 세상 사람들을 향해 개봉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다.


"찬연한 시정이 넘치는 위대한 아름다움이 가득 찬 미지의 세계"라고 이 곡을 격찬한 카잘스는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주를 할 정도로 무반주 첼로 모음과 자신의 만남을 숙명으로 여겼다.


이러한 카잘스와 바흐의 필연적인 만남을 두고 어찌 카잘스에게 후대에서 예우를 소홀히 할 수 있을까? 가히 성서의 복음을 세상에 전한 첼로의 성자라 할만하다.


이번 주말엔 소년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200년만에 깨워낸 성서를 들으며, 완벽에 가까운 선율에 몸을 맡기고 주중에 쌓인 피로를 잊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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