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어디에나 그렇듯, 사랑을 향한 열망은 불멸의 음악에도 깃들어 있다.
서양 음악사가 대부분 그렇지만 클래식에는 필연적으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겪은 사랑과 좌절을 통해 승화된 명곡들은 신록만큼이나 싱그러운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추천곡 : 환상교향곡
1. 사랑을 원했으나 실패 한 음악가로는 베를리오즈가 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무명의 음악가 시절 영국의 연극단체 순회공연을 관람하러 갔다가 셰익스피어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과 인생에 중요한 획을 긋게 된다.
당시에 청년 베를리오즈는 극의 내용보다는 주연을 맡은 여배우 헤리엇 스미스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을 주체할 수 없던 그는 청혼을 했지만 별 볼 일 없었던 사내는 보기 좋게 딱지를 맞는다.
거절에 분노일까, 사랑에 대한 끝없는 열망일까.
그 후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불길 같이 타오르는 감정을 환상 교향곡(Fantagique Symphonie)으로 승화시켰다. 이는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일약 전 유럽의 스타 음악가로 만들어 줬다.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로 한 베를리오즈는 5수의 도전 끝에 로마 대상을 수상하였고, 로마 유학의 기회를 얻었다. 긴 시간 끝에 성공을 맛본 베를리오즈는 짝사랑 대신 명성에 걸맞은 연애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교향곡을 썼을 때의 뜨거움이 시들해졌기에, 그는 새 연인 피아니스트 마리 모크와 짧고 강렬한 연애를 시작한다.
당시 두 연인은 사랑했지만, 로마대상 수상자는 미혼 이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인지 그는 약혼만 하고 로마로 떠나버린다. 그러나 마리 모크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베를리오즈를 배신하고 결혼식을 올려버렸다. 겨우 찾은 사랑에 배신당한 그는 암살 계획까지 세우나, 로마로 돌아와 환상교향곡의 연장인 렐리오를 쓰며 2년 간의 유학유 마칠 수 있었다.
유학이 끝나고 성공된 삶을 살던 그는 거짓말처럼 헤리엇을 다시 마주치며 꿈꾸던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이제는 당당해진 그가 맘에든 헤리엇은 그의 구애를 받아주었고, 베를리오즈는 평생 꿈꿔왔던 그녀를 천생배필로 맞이할 수 있었다.
꿈같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짧은 허니문이 지나자 그들의 관계는 불화와 집착으로 이혼으로 치닫게 되었다. 인기가 하락하던 헤리엇의 끈질긴 집착에 질린 베를리오즈는, 사제 관계이던 마리 레치오와 불륜을 저지르며 파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 시절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던 그는 12년 동안 치료비와 생활비를 모두 대쥤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재혼을 하였다. 끈질기게 사랑을 추구한 그는 결국 사랑을 이뤘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 사랑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실패한 음악가로는 차이콥스키가 있다.
차이콥스키보다 9세 연하의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는 거의 일방적으로 차이콥스키에게 구애를 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차이콥스키는 안토니나가 급기야 결혼을 담보로 자살소동을 벌이자 인간적인 동정심에 결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자 그렇게도 매달리던 안토니나는 돌연 차이콥스키의 숨통을 조이며 그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에게는 부유한 철도 경영자의 미망인인 나데주다 폰 메크 라가 있었다. 그녀는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조건을 요구하는 후원자가 있어 물질적 정신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폰 메크 부인과 13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실패한 사랑을 메어왔다.
물론 매년 6천 루블의 후원금도 전해졌으나 돈보다 차이콥스키는 정신적 후원에 더 감사했다. 그의 열렬한 후원자인 메크 부인은 결혼 생활에 괴로워하는 차이콥스키에게 훌륭한 카운슬러까지 돼주었다.
그는 비록 원하지도 않은 사랑에 실패한 삶을 살았으나, 메크를 통해 조건 없이 음악적 사랑을 공유한 아름다운 연인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겠다.
3. 원하지 않던 사랑에 성공한 작곡가론 브람스가 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요하네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도 '한' 사랑한다. 로베르트 슈만을 스승처럼 따랐던 브람스는 슈만이 정신 분열 증세로 고생할 때부터 클라라를 위로했고, 결국 슈만이 라인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난 뒤에는 미망인 클라라에게 생활비를 제공하며 버팀목이 돼주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써 나갔다.
당시 천재 바이얼리니스트 요하힘도 클라라 슈만을 돕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이들 둘에게는 클라라가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해도 무방할 수 있겠다.
흔히 독신자 브람스 하면 고독한 음악가로 연상되고 있지만, 그의 이러한 캐릭터의 이면에는 14세 연상의 클라라라는 상징적 동반자가 있었던 점을 음미해 볼만하다.
4. 원하던 사랑에 성공한 작곡가론 쇼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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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시즘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쇼팽, 그는 진정으로 로맨틱한 사랑을 나눈 인물이다.
프레드릭 쇼팽과 죠르드 샹드. 둘은 너무도 사랑했다. 연인 쇼팽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준 상드였지만 둘은 끝까지 결혼하지는 않았다.
쇼팽이 평소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 요양을 권하는 의사의 말을 따라 마르세유섬으로 향 할 때 상드는 파리 상류사회의 모든 영화를 집어던지고 그의 옆을 지켰다.
그러나 마르세유섬의 습하고 차가운 날씨는 쇼팽의 폐를 더욱 상하게 만들었고 상드의 애절한 흐느낌을 뒤로하고 39세의 짧은 생을 접었다.
이처럼 클래식 한가운데에는 사랑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의 순수하고 소설 같은 사랑은 아마도 서양음악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아름답고 슬픈 클래식, 즉 고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