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by 푸르름



추천곡 :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


서양음악사에서 불멸의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들이 다수 있다.


그러한 작곡가들 중에 Family Name의 첫 글자가 B로 시작되는 작곡가는 꽤 되는 편이다.

만약 이 B가문의 음악가 중 딱 3명의 작곡가를 꼽는다면 누가 뽑힐 수 있을까?


평론가들은 이러한 질문에 바흐(J.S.Bach), 베토벤(L.V.Beethoven), 브람스(J.Brhams)를 특출 난 작곡가라 판단한다. 그리고 이 세명을 일컬어 일명 3B라 통칭하곤 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사람들은 바흐와 베토벤을 3B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이의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음악적 업적과 보물과도 같은 유산이 대부분의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한 사람. 지극히 개인적 사견으로 문제는 브람스다. 물론 브람스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에서 사후 20세기 중반, 아니 오늘날에까지 이어진 그의 명성과 인기는 당연히 그를 3B의 반열에 세우는데 어색해하는 이가 많지 않다.


그의 우수에 찬 감미로운 멜로디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적 추구는 많은 애호가들을 매료시켰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부터 브람스는 서양음악의 본 고장인 서구 유럽으로부터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이는 호사가들의 입담 정도의 수위를 넘어 브람스의 역기능까지 거론하며, 브람스를 3B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브람스 시대에는,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로부터 시작됐던 낭만주의 사조는 무미건조한 절대 음악의 나열을 반복해온 고전주의를 탈피해 인간의 자유로운 감성과 풍부한 음상의 표현을 추구하는 표제음악으로 패턴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관현악의 규모도 기껏해야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관 편성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울림을 시도하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격변기였다.



여기에 브람스가 반기를 든 게 결정적인 패착이라 생각한다.


브람스는 신고전주의를 주창하며 고집스럽게도 절대 음악과 소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을 지향했고 보수적인 자세로 시대를 쥐고 흔들었다.


당시 브람스가 음악계나 청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이러한 브람스 효과는 낭만주의 기치를 든 음악가들을 위축시키고도 남음이었다.



그로 인해 오늘날의 우리는 30년 내지, 일각에서는 100년이 뒤쳐진 오케스트라(기교, 음색 등)와 마주하고 있다고 나로서는 극히 개인적 사견을 내보이고 싶다.


그렇다면 감히 브람스를 3B에서 밀쳐내고 왕좌를 차지할 정도의 새로운 인물이 존재할까?


이에 대한 답으로 유럽 음악 애호가들은 의외의 인물을 제시한다. 그들은 새삼스럽게도 브루크너(A.Bruckner)를 옹립하고자 한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브루크너는 일체의 세속적·대중적인 음악을 거부하고 신성하고 거룩한 종교음악에 전념했던 마치 성직자와도 같은 작곡가였다.


그는 연주시간이 60분에서 70분 이상되는 대규모 편성의 교향곡(0번~9번)들을 양산해 내고 있었다. 따라서 브루크너는 당시의 어지간한 오케스트라가 소화해 내기 힘든 규모의 곡이 대부분이 어었고 연주시간도 문제가 되어 연주 불능의 음악이라고 거절당하기 십상이었다.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좌절의 벽에 부딪쳐 내동댕이 쳐지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작곡가 브루크너는 브람스를 찾아갔다. 11살이나 아래인 브람스에게 치욕스럽게도 읍소하며 자신의 곡이 연주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브람스의 대답은 냉랭했다. 브람스와 대척점인 바그너를 추종하는 브루크너의 음악은 비생산적이라며 냉소마저 보였다.


결국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들 중에 생전에 연주되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는 62세가 되어서야 성공적인 교향곡을 열 수 있었고, 그마저도 10년도 안되어 건강이 악화되며 짧은 성공을 맛보고 73세에 사망하였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후세는 브루크너의 진가를 알아보고 격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일관된 음악적 성향과 관현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 심성을 정화시켜 줄 수 있는 고결한 음악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후에 브루크너의 수제자 말러(G.MAHLER)는 작곡가로서 지휘자로서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고 스승이 채 맛보지 못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브루크너가 위대해지는 대목이다.



재밌는 건 말러가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절대로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은 점이다. 다만 이를 스승의 대리 복수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말러가 추구하는 바가 브람스와 음악적 지평이 너무나도 큰 괴리가 있었다. 진보적이고 자유분방한 밀러로서는 브람스의 형식미는 부정하지 아니하되 깨야할 틀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바로크에서부터 후기 낭만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현악을 듣다 보면, 브람스가 끼친 해악이 얼마나 약 올렀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브루크너를 교회 파이프 오르간 구석에 쭈그려 울게 하고 있다.


동네 고양이를 박멸하겠다고 화살로 지붕 위의 고양이를 저격하던 괴팍한 브람스의 오만과 편견에 아직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브람스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랑받고 계속 오케스트라의 연주곡목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음악 애호가들이 더 많이 들어줄 확률에 연연하는 방송 편성과 연주단체의 인식과 풍토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기조는 존재조차 희미한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척하게 하고, 당장 잘 나가는 음악가의 작품에 편중해 재탕, 삼탕으로 은연중에 대중은 세뇌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개인적 희망이지만, 당분간 장사는 잘 안돼도 브르크너 류의 소외된 천재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청중들의 폭넓은 음악적 선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평가가 내려지는 풍토와 저변이 형성될 때 원석과도 같은 음악들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어 풍요로운 보석이 될 것이라 본다.

1900년대 프랑스의 여류시인 프랑수아즈 사강은 브람스의 음악에 크게 감동받은 나머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라는 로맨스 책을 내며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3B론으로 시작하여 브루크너를 찬양하는, 두서없이 긴 글을 갈무리하며 한미 하고 오만한 문화 지망생이 그녀와 음악 애호가에게 감히 묻고 싶다. "그대는 브루크너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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