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 클래식

by 푸르름

내가 클래식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선 아버지 소개를 해야 하겠다.


다시 태어나면 닮고 싶은 1인이 우리 아버지다. 명예나 재물을 가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것은,
인생을 즐기며 산다는 것이다.


50이 넘은 아버지는 세상이 너무 즐겁다고 매일 말씀하신다. 이 시국에도 기쁨을 잃지 않고 사시는 우리 아버지 참. 대단하시다. 내가 돈을 벌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지도 않지만 만약 기적처럼 돈을 쫌 번다면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꼭 만들어 드리고 싶다. 그동안 설움을 너무 많이 당하셨다. 그만큼 클래식은 대중들이 좋아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쩜 예전부터 한이 서린 트롯이 더 큰 감동과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직업부터 아버지는 신문기자.

이거는 뭐 특별 날 것이 없다. 신문기자라고 명예가 뛰어난 것도 금전적으로 남보다 더 버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날마다 즐거울리는 만무 바로 취미생활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에서 클래식 마니아들은 음악을 전공했거나 집이 아주 고급 진 부유층들의 전유물일 텐데 그것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아버지의 취미. 아마 일반인 중에서는 우리 아버지보다 더 많이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방송에서 음악을 잘못 소개하면 직접 전화해 바로 잡아주는 열정까지 갖고 계신다.


어떤 음악이든 방송에서 나오는 모든 음악은 완벽하게 다 알고 계신다. 이런 고급 진 취미를 갖게 된 이유는 슈퍼 일을 하시는 할머니의 돌봄을 전혀 받자 못하던 아버지는 어릴 적 매일 흙투성이가 되어 깜깜해질 때까지 놀거나 친구들과 거칠게 지냈다고 한다. 슈퍼와 살림 집이 멀어서 어린 나이의 아버지는 컴컴한 집에 혼자 지내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어린 동생이 불쌍해서인지 큰아버지께서는 혼자서도 지낼 수 있도록 첫 월급의 반이 넘는 거금을 들여 클래식 전곡을 선물했다고 한다. LP판은 생겼으나 그것을 틀 수 있는 턴테이블이 없어 1년을 더 기다린 후 중고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바스락 거리는 종이에 포장되어 있던 LP판을 꺼내 바늘이 긁히며 내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선율을 접하고 아버지는 그 황홀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운 선율에 전율을 느끼며 듣고 또 듣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음악 선생님께 물어보고 그리고 작품이 이해되면 다시 듣기를 무한 반복했다고 한다.

그럼 이제 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다.

covid-19
전 세계는 이 단어에 의해 평범했던 일상들을 모두 멈추게 되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벚꽃이 흩날리는 날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서로서로 공유하고 경쟁하듯 프로필 사진들은 꽃으로 바꾸던 소소함도, 부담 없이 만나 오늘 하루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리웠던 사람들을 주말에 만나 길을 걷고 맛있는 것을 먹었던 그 평범함이 이제는 언제 가능할지 아무도 예상 못하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신림에서 컵밥을 먹으며 20대 청춘을 보낸 나에게 코로나 2021년은 더욱 잔인하다.
맘 편하게 놀지 못한 나는 드디어 취준생에서 가운데 글자를 바꾸어 취업생이 되었으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가족들과 얼굴이 터질 정도로 소리쳐보고 조금씩 떠나갔던 친구들에게 자랑질 전화 수십 통 돌리고 그러고는 끝. 취업 전 두 달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신림보다 더 한 두더지 생활이 되었다.
5년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은 취업생이 되면 2개월 동안의 자유 시간 동안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오스트리아의 빈, 잘츠부르크나 체코의 프라하 등 수많은 도시를 탐방하고 글을 쓰는 것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알에서 깨어 나와 비상할 수 있는 순간 길이란 길은 모두 막혀버렸다.

물론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합격이라는 입을 다물 수 없는 선물을 받았기에 만사에 감사할 따름이나, 아쉽고 억울한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이런 시간은 앞으로 내가 은퇴 후에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리 가 본 친구들을 통해 얻어낸 알짜 정보를 통해 일정과 장소 식당, 숙소까지 그려놓은 지도는 벽에 관상용 그림이 되었고, 두 번 오지 않을 처음 맛본 2개월이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게 되었다. 여행 외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정말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운데 정말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인데 할 게 없다는 것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며칠간 강아지와 인적이 드문 곳을 산책한 뒤 홀로 집 이곳저곳을 뒤지던 어느 날.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놓은 벽장까지 뒤적거리다 수많은 음악 cd가 층층이 쌓인 보관함과 노랗게 변한 LP판을 발견하였다. 휴대폰 내부 mp3나 유튜브로 어느 음악이든 들을 수 있는 2021년에 음악 cd와 LP판이라니? 버려야 할 구시대 유물이라 생각하며 대체 어떤 음악인지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그곳에는 1685년생 바로크 시대의 바흐부터 현대 1928년생 전자음악의 대가 슈토그하우젠까지 클래식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대부분이 클래식을 너무 사랑하여 매일 듣고 또 듣고 이해 안 되는 음악에 고개를 돌리는 가족들에게 들려주던 아버지가 모아 두었던 것들이었다. 20년 전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들며 그때부터 매일같이 클래식을 듣고 아버지와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쇼스타코비치와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며 러시아로 떠났고, 어느 날은 바그너와 브람스를 들으며 독일로 떠나 시대를 만끽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몸이 가야만 뜻깊은 것이 아니라 클래식을 통하여도 그토록 원하던 유럽을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2달 동안 정신없이 벽장 속에 숨어있는 클래식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앞으로 코로나는 순식간에 사라 질 수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은 2달 동안 내가 느꼈던 매 순간순간을 글로 남기어 나와 독자분들이 함께 현실을 벗어나 여행을 떠났으면 하는 마음에 가이드 북을 남긴다.

장기간의 거리두기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많은 분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행복한 순간이 되기를 바라며, 매주 토요일마다 벽장 속으로 떠나는 100여 편의 클래식 여행 가이드 북을 시작한다.


평생 꿈꾸어 왔던 일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멈추어 서버린 나와 같은 억울한 독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