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과 클래식(4) - 8.8 섬의 날 기념
추천곡 : 주세페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두 줄의 담백하면서도 여백의 미로 점쳐진 이 시는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이다. 마치 17음으로 일본의 ‘하이쿠’와 같은 모습의 이 짧은 시는 ‘섬’이 가지는 아득함과 환상, 친근함을 절제된 표현으로 완벽하게 구사하였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이웃조차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섬으로 잇는 시적 표현은 그래도 섬이 있기에 완전히 남이 아닌 언젠가 ‘우리’가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 같아 좋았다.
이처럼 섬은 누군가에겐 고된 하루를 잊고 떠날 수 있는 이상향이자,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휴가처로써 많이 인식된다. 그러하기에 2018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섬의 날의 존재를 알았을 때, ‘섬의 미래적 가치를 보존한다’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섬 자체를 떠올리고 기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뜻깊었다. 바쁜 일상으로 지친 우리가 섬의 날을 통해 과거에 행복했던 추억, 슬펐던 기억뿐만 아니라 미래에 희망과 설렘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이러한 섬의 날을 기리며 소개하고 싶은 클래식은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中 - 서곡’ 부분이다. 지금부터 베르디와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통해 왜 섬의 날에 이곡을 추천하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낭만파 오페라 작곡가로서 양대 산맥을 이뤄낸 이탈리아의 불세출 음악가이다.
소년 시절 성당에 다니면서 합창단에서 활동을 했던 베르디는 미사 도중에 들려오는 반주 오르간 소리에 심취해 자신의 파트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신부에게 자주 혼쭐이 나곤 했다 한다.
그러고 나면 베르디는 억울한 맘에 "하느님, 우리 신부님께 벼락을 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걸 빼놓지 않았다 한다. 후일 실제로 이웃 성당에 벼락이 떨어져서 몇 사람이 희생됐는데 그때 그 신부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베르디는 이 사고가 자신의 기도 때문이라고 죄책감을 가졌다고 한다.
어린 맘에 상처가 돼 반발심으로 일으킨 마음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베르디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디가 당시 작곡가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부의 축적에 성공한 보기 드문 케이스를 성취한 후 그때 일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칭송받아 마땅한 선행을 이어나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넉넉한 경제적인 여유를 통해 자신의 고향 주민들을 위한 병원을 지어주는가 하면, 은퇴한 음악가들이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양로원 ‘카사 베르디’를 건립하는 천사와도 같은 기부왕이기도 했다.
베르디의 작곡 활동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에 해당하는 15여 년간 대표작 '라트라비아타', '일트로 바트 레' 등 18편의 오페라를 작곡한다. 이를 바탕으로 넉넉한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된 베르디는 이후 40여 년 동안은 느긋하게 8편의 오페라만을 쓰게 된다.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Les Vepres Siciliennes)'는 베르디의 후기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1290여 년 경 발간된 '시칠리아의 대학살(Lu rebellamentu di Sichilla)'을 모티브로 하는 5막에 이르는 파격적인 대작이다. 제1회 만국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던 파리의 위촉으로 작곡된 작품으로 1855년 6월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은 1282년 부활절, 시칠리아 섬의 수도 팔레르모와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건을 다룬 1290년경에 쓰인 ‘시칠리아의 대학살’에서 소재를 차용하였다.
당시 시칠리아는 나폴리 왕국의 프랑스 영주 가문 샤를 왕이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공을 살해하고 차지해 샤를의 통치하에 있었다. 프랑스의 강압적인 지배에 시칠리아 인들은 반감을 갖고 있던 차, 여인들을 희롱한 프랑스 군인들에 이야기에 격분한 주민들이 군인들을 살해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282년 한 성당의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시칠리아 인들이 기습에 나섰고, 프랑스인들과 친 프랑스 인사를 죽이는 대학살을 배경으로 만든 그랜드 오페라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비극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로를 배경으로 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칠리아를 점령한 프랑스 세력의 총독인 몽포르 테 총독은 어느 날 자신에게 반기를 든 저항군의 지도자 아리고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아리고는 몽포르 테 총독 암살 계획을 고발하기에 이르고, 협박에 못 이겨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리고의 모습에 저항군을 석방시키고 성대한 결혼식을 열어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아르고와 결혼할 여인 엘레나 공녀는 몽포르 테 총독에게 오빠를 잃은 것을 잊을 수 없었고, 결혼식 당일 저녁기도의 종이 울리자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며 혼돈 속에 오페라는 마무리된다.
수많은 곡을 성공시킨 베르디이지만, 이 곡은 베르디가 이전에 선보였던 오페라만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하고 호불호가 갈려졌던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1855년 6월에 파리 오페라 측에서 초연하였지만 이내 인기는 사그라들고 쓸쓸히 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성을 알아본 시인 에토레 카이 미(Ettore Caimi)가 제목을 '조반나 데 구츠만(Giovanna de Guzman)'으로 개명하고, 장소를 포르투갈로 바꾼 채 이탈리아어 대본으로 수정하면서 작품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1855년 12월, 6개월 만에 파르마에 있는 레지오 극장에서 재 초연된 작품은 이전과 달리 선풍적 인기를 끌며 오늘날 공연되는 이탈리아어 판으로 완성되게 된다.
보통 오페라에서 통상적으로 서곡(Overturen)으로 무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반면, 베르디는 자신의 오페라에 따라 서곡과 서막 곡(Vorspiele)을 선택해서 병행해 곡을 완성했다.
그의 서막 곡들은 대부분 곡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 어둡거나 슬픈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서곡들은 대부분 힘차고 밝은 힘찬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은 여타 전주곡처럼 느리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곡이 출발해 중반 이후부터 관현악의 활기찬 템포와 스케일을 들려주고 있다.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자체는 5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부분은 극한의 아름다움을, 어떤 부분은 심오하며 난해한 부분으로 기나긴 곡을 이끌어간다. 그러하기에 대부분 5막을 전부 듣는 것도 추천하지만,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끄집어 내 소개하는 서곡을 추천한다.
독특하게 튀는 악기 없이 무섭고 느리게 서주를 시작하여 우렁차게 끝나는 서곡은 관혁악곡으로서 독립 곡으로도 충분할 만큼 완벽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곡은 첫 도입부를 진혼식으로 대학살을 담아 장엄하게 연주되다, 혁명군의 힘차고 격렬한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행진곡 풍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우리의 듣는 귀를 즐겁게 해 준다.
- 2회 썸 페스티벌이 열린 통영 앞바다
섬의 날을 기념하여 희망, 설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자며 조금은 과격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를 추천하는 것을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베르디에 이 오페라는 사랑과 부성애 우정 등 긍정적인 감정과 함께 전쟁 속에서 비극, 시기, 배신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
희망도 비 극속에서 피어나고, 행복도 슬픔 끝에서 빛이 나듯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를 들으며, 일상에서 겪은 부정적인 감정을 떠올리며 모두 섬에서 부수고 긍정적 마음을 품은 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각자가 만든 마음속에 간직한 그 섬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