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과 클래식(2) - 7월 27일
추천곡 : 베토벤 '웰링턴의 승리' OP.91
올해 1월. 유퀴즈온더블럭이란 프로그램에서 라미 현이라는 사진작가가 소개된 적 있다. 작가는 2017년부터 한국 전쟁 때 낯선 땅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을 찍으러 수많은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어쩌면 점차 잊혀 가는 그들의 공로를, 이러한 프로젝트로 되새겨주는 작가의 모습에 사명감과 동시에 존경심이 느껴졌다.
이 용사들을 위해 우리 정부 역시 정전 60주년 기점인 2013년부터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는 해당 날짜가 1953년 7월 27일이었기에 당시 휴전협정 날짜라는 상징성을 나타낸 것이다. 휴전 협정 전까지 한반도에서 발발한 민족 간 총부리를 겨눈 3년간의 비극적 전쟁 때문에, 국군 14만 명에 더해 11~12만이 되는 연합군이 전사하였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기념일로써 22개국으로 이루어진 UN 연합군을 추모하고 감사함을 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매우 뜻깊은 ’UN군 참전의 날‘에 맞춰 오늘 소개하고 싶은 곡으로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를 추천하고 싶다.
한창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며 승리를 거두던 19C초. 1813년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연합군은 나폴레옹의 군대를 비토리아에서 막아낸다. 이 전쟁의 웰링턴 장군과 연합군을 기리며 작곡한 곡이 바로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이다.
악성(THE GREAT MUSICIAN)에 반열에 든 베토벤은 어째서 영국 장군의 승리에 이 곡을 만들었는지, 또 이 곡이 UN군 참전 기념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1. 곡의 배경
1813년 웰링턴의 승리 이전까지 베토벤의 삶은 점차 피폐해지고 있었다. 1803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다는 교향곡 3번에서 그는 보나파르트라는 원제를 지우고, ’영웅‘으로 고칠 만큼 이미 그는 나폴레옹에게 큰 실망을 한 상태였다. 이 와중에 2년도 안된 1805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전투에서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어 베토벤의 조국은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베토벤은 이 당시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를 초연하였으나, 청중은 대부분 빈으로 쳐들어온 프랑스 군인이었기에 대 실패를 맛본다. 이후 10년간 그는 불후의 명작들은 남겼으나 지금의 베토벤의 유명세에 비해 별다른 큰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다행히 오랫동안 오스트리아를 위협하던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의 패배를 계기로 급속하게 몰락하였으나, 기나긴 전쟁 탓에 베토벤은 점차 궁핍해져 갔다. 특히 베토벤의 후원자들 가운데 연금을 지급해 준 교향곡 5번과 6번을 바친 로프코비츠 후작은 파산하고, 킨스키 후작마저 전사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루돌프 대공뿐이었다. 그 밖의 옛 부터 친하던 사람들도 세상을 떠나거나 빈을 떠나서 베토벤은 점점 쓸쓸하게 지내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1813년 베토벤의 인생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813년 6월 스페인 비토리아에서 웰링턴 후작의 연합군이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하는 소식을 듣고, 베토벤의 친구 멜첼은 그에게 곡을 의뢰한다. 메트로늄을 개량해 유명해진 멜첼은 그가 새로 만든 자동 합주용 기계를 이 곡에서 시험하고자 하였다. 베토벤은 멜첼의 요구대로 원곡을 만들어 준 뒤,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그 해 12월. 교향곡 7번과 함께 멜첼의 자선음악회에서 초연한다.
당시 심오하고 어둡다는 평 때문에 평균 이상 정도만 모였던 빈의 시민들은 그야말로 이 곡에 엄청난 열광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인기에 힘입어 1814년 11월. 나폴레옹 전쟁에 논공행상 자리를 위한 빈 회의에서 앞서 설명한 ’피델리오‘가 재상연 된다. 이 때는 1805년과 달리 베토벤을 ’빈이 낳은 영광‘이라는 칭송까지 받게 하며 19C 독일 극장가의 상시 공연 작으로까지 남게 한다. 그의 제2 전성기가 현재 가장 평범하다 혹평받는 ’웰링턴의 승리‘를 기점으로 하니 아이러니하다.
2. 곡의 해석
베토벤은 '웰링턴의 승리'에서 도입부부터 이례적으로 40초가 넘는 작은북의 독주로 시작해, 강렬한 트럼펫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행진곡 풍의 음악을 선보였다.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35초가 넘는 큰북의 독주에 이어 과감한 금관악기들의 포효를 연출했다.
곡 하이라이트 부분에는 과감히 대포 소리, 소총 소리를 삽입해 전쟁을 묘사하는 긴박한 멜로디를 더욱 실감 나게 표현했으며,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연합군의 진격을 힘차면서도 극적으로 묘사했다.
후반부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과 감동을 활기차고 밝게 표현하며, 전쟁에 지친 병사들을 위로하고 승리에 도취된 시민들과 기쁨을 축하하고 있다. 또한 1부는 전쟁터, 2부는 승리의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으며 교향곡이라고 보기보단 교향시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1부에서는 표제처럼 전쟁터의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영국군 진영의 북과 나팔소리와 행진을 그리고 프랑스 군의 북소리와 행진으로 진행된다. 이후에는 프랑스군의 선제공격과 이에 맞선 영국군의 응전, 마지막 전면전을 끝으로 1부는 장송곡 느낌으로 조용히 마무리된다. 2부에서는 1부와 달리 승리의 교향곡이라는 단악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영국 국가가 흘러 퍼지는 것을 끝으로, 2부는 힘찬 환호성과 함께 승리의 표효를 그대로 담아내며 곡 전체는 마무리된다.
3. 곡의 의미
베토벤의 다수의 수작들과 비교해 오늘날 이 곡에 대해 대중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전쟁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교향곡 7번이나 8번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로 짜깁기한 듯 평범하다. 실제로 베토벤은 이 전쟁 교향곡을 이용하여 당시 인기가 없던 8번 교향곡을 홍보하는 등, 당시 베토벤에게는 어둠의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오늘날 이곡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그다지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웰링턴의 승리‘ 말고, 악성 베토벤의 다른 수많은 명작들을 듣고 감동받기 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이 전쟁 교향곡은 작품성보다는 나폴레옹이라는 황제의 몰락과 더불어 당시 유럽인들의 정치적 시대적 의미가 더 큰 작품이다. 그러나 다른 교향곡이 워낙 뛰어나서 그렇지 웰링턴의 승리 역시 경쾌하면서도 듣기 좋은 명곡 중 하나라고 본다. 오히려 베토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7번이나 8번과 같은 곡보다는 이 곡이 베토벤에 다가가는데 더 알맞은 곡이라 생각한다.
또 한 곡 자체로서도 당시 황제 나폴레옹에 대항한 수많은 연합군들에 대한 헌정곡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1809년 나폴레옹에게 패배하여 수많은 토지와 거액의 배상금을 줘야 했던 오스트리아로서는 연합군의 승리는 매우 뜻깊었다. 그러하기에 당시 빈뿐만 아니라 연합국 고위층도 빈 회의에서 베토벤을 그토록 칭찬한 것이다.
UN 참전용사들의 희생 덕에 올해도 7월에는 무궁화 꽃이 피어나고 있다. 온 유럽의 황제가 되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야욕이 연합군에 의해 저지되었듯, UN 참전용사분 들의 희생이 우리의 강산을 수호해주어 지금에 이르렀다.
올해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참전용사분들과 그 가족을 한국에 초대하기 어렵지만, 웰링턴의 승리를 들으며 집에서나마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분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