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을 위한 판타지

기념일과 클래식(3) - 8.15광복절

by 푸르름


추천곡 : 안익태의 교향적 환상곡 제1번 ‘한국’



광복. 문자 그대로 빛을 회복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한민족에게 있어서는 36년이란 어둠 끝에 국권을 되찾았음을 뜻하는 대표적 단어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히로히토 덴노가 일본방송협회(현 NHK)를 통해 직접 항복을 선언하며, 꿈에도 그리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는 가난과 배고픔, 잔악한 일본 제국의 추적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핏 바랜 독립의 열망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기에 우리는 대외적으로 조선 민족의 ‘독립’이란 명분을 갖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광복 3년 뒤 그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주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 비록 이후 북한의 남침으로 5년 만에 나라가 반으로 나뉘었지만, 그러하기에 8월 15일은 5개의 국경일과 수많은 기념일 사이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자 기억해야 할 날이라 생각한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을 통해 국경일의 지위를 갖춘 광복절은 올해로 76주년을 맞이하였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추천하고 싶은 곡은 안익태 선생의 ‘한국 환상곡’이다. 정식 명칭은 교향적 환상곡 제1번 ‘한국’으로 흔히 외국에서는 코리아 판타지로 불리고 있다.

곡을 설명하기 앞서 안익태 선생은 개인적으로 수많은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 환상곡 이전 ‘애국가’를 작곡한 위인이지만, 1940 년대의 행적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환상곡 조차 이후 교쿠토(극동)이나 만주 환상곡이라는 친일 곡에 자기 복제 형식으로 쓰여 대대적 비판을 받는 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절이라는 경사스러운 날에 한국환상곡을 추천하는 이유는 곡 자체의 내용으로는 애국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36년 애국가 작곡 이후 이를 확장시켜 전통과 일제 치하의 고통, 광복 더 나아가 6.25까지 다뤘기에 그 의의가 큰 곡이다.

교향적 환상곡 '한국' 일명 '코리아 판타지'는 안익태 선생(1906~1965)이 필생의 작품으로 오랜 착상과 구상, 작곡에 소요된 오랜 시간적 노력만큼이나 그의 열정과 집념이 깃든 작품이다. 이 곡은 안 선생의 역사관과 민족관의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무게감을 반영해 대규모의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으로 구성된 대곡이다.

교향적 환상곡 '한국'은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수난을 그린 대 서사시다. 약소민족으로서의 울분과 저항, 그리고 민족의 슬기와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은 합창부의 주제가 된 애국가와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이 두 곡은 착상 동기나 작곡 완성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다.

안 선생이 애국가 가사를 처음 대한 것은 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국 교회에서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올드 랭 사인'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 을 들었을 때이다. 이때 안 선생은 한국 사람으로 국가를 직접 작곡하기로 맘먹고 신시내티 음악대학 재학 시절 작곡에 착수해 1935년 11월 작곡하였다. 그 후 12월 28일 안익태는 애국가를 처음으로 초연하였다. 안익태 선생은 이에 더해 일본 쿠니타치 음악학교 시절부터 마음먹었던 교향적 환상곡 '한국'도 미국으로 건너온 뒤 구체화하였다. 그는 신시내티 음대를 거쳐 필라델피아 음악대학 재학 시절에 본격적인 작업을 통해 1935년 음대를 졸업한 해에 1차로 곡을 완성했다.


후에 카네기 홀에서의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작품 심사에 입선,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될 찰나 단원들의 고의적인 방해로 말미암아 연주가 중단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뚝심 끝에 그는 결국 완성된 애국가를 한국 환상곡 후반부에 삽입해서 주제로 삼아 1936년 완성하였다. 이후 교향적 환상곡 '한국'은 1938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영국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세계 초연됐다. 후에 안 선생은 또다시 8·15 해방까지를 취급했던 내용에서 6.25 후에 다시 민족 수난인 한국전쟁의 과정을 추가로 삽입해 곡을 완결했다.

이 곡은 단군 시조의 개천으로부터 시작해서 민족이 그간의 역사적 시련을 겪으면서 독립을 쟁취하기까지의 민족의 근현대 발자취를 망라하고 있다. 한국환상곡은 시작과 함께 천지가 진동하듯 개국을 알리는 관현악의 포효가 터지고, 호른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아름다운 강산의 풍경을 그린다. 이어 평화롭고 전원적인 서정이 흐르다가, 플루트가 구성진 우리 민요가락이 다른 독주 악기와 더불어 어우러진다.

곡은 다시 호른의 흥겨운 주제로 돌아오고 밝고 흥겨운 타령조로 바뀌어 무도 곡조의 분위기로 전개된다. 그러나 일순간 토속적인 전원 풍경은 일제의 침략으로 짓밟혀지고 암흑시대가 그려지고, 민족의 저항과 투쟁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독립을 위한 항거가 계속되는 사이 평화로운 가락이 나오다가 끊기고 다시 투쟁이 계속된다. 전 관현악은 장엄하고 처절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3·1 운동의 절규와 함성이 울려 퍼진다.

헝가리의 민요를 원용해서 만든 행진 곡조의 나팔소리와 함께 애국가가 힘차게 울려 퍼지다가 강압에 흐트러지고 점점 사라진다. 독립 투쟁에서 희생된 애국지사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진혼곡이 아악의 정취로 연주되다가 민족의 독립 투쟁은 다시 일어나 우렁찬 합창으로 대한 만만세를 외치며 애국가를 소리 높이 외 친다. 8·15 민족 해방의 환희와 감격을 소리로서 외치고 독립의 쟁취를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4번째 부분에서 독립의 기쁨도 잠시 공산군의 남침으로 민족 비극의 암운 속에 시달리는 장면에서는 평화스러운 노래가 나오다가도 끊기고 만다. 이 민족 비극의 6. 25 동란에서 조국 수호를 위해 회생된 영령들의 진혼을 위한 무거운 장송곡이 나오고 전체 민족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종결부로 곡이 끝난다.

이처럼 한국환상곡은 단순히 한국인으로서 교향시와 교향곡 사이에 환상곡을 작곡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최초의 환상곡이라는 이름값만이 전부라면, 향후 작곡가의 친일 행적에 한국환상곡은 철저히 가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환상곡은 25~30분가량의 짧은 선율에 민족의 슬픔과 고통 이를 넘어선 광복이란 환희를 모두 녹아내었기에 높은 가치가 있다.


광복 76주년. 파도처럼 쏟아지는 과잉 정보와 극단에 치닫는 혐오 갈등 속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만의 가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환상곡 이후 만들어진 1940년대 다른 환상곡들이 비록 논란이 있을지언정, 1936년 교향적 환상곡 제1번 ‘한국’이 우리 민족의 대 서사시라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다. 친일 행적이라는 장막을 분별해 걷어내고 곡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우리 민족의 처절한 저항과 독립의 열망을 들으며, 광복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애국지사분들의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광복이라는 민족의 가장 경사스러운 날에 한국환상곡이라는 곡을 추천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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