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산다는 것

해지 이야기

by 이수진


오늘은 어디로 나들이를 나갈까 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한 아이가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한다. 조금은 식상하게 들렸다.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은 이웃집 묶여있는 강아지를 말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교사니까 다시 한번 물었다. “강아지? 어디로 가야 하는데?” “응, 우리 할머니 집 옆집에 가면 강아지가 있는데 보고 싶어.”한다. 뭔가 내 머릿속 강아지와는 다른 녀석을 말하는 듯했다. 다른 아이들도 좋다고 손을 들어준다. “그럼 오늘은 해지가 앞대장이다. 길을 안내해 주면 우리가 따라가 볼게.”


길을 나섰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어느새 피어난 아카시아꽃 한 송이씩 집어 들고 한톨한톨 따먹으며 안내를 따랐다. 아이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당당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그 길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하다. 가는 길에 수많은 유혹이 흔들었지만 결국 그곳으로 도착했다. 태어난 지 두어 달 된 하얀 진돗개 두 마리가 토실토실 살이 올라 지해와 모든 친구들을 반겼다. 해지는 당당하게 강아지들 곁으로 가 안아주고 쓰다듬고 이미 수없이 많은 경험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섯 살, 아직 네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의 움직임이 또 다른 아이들을 움직인다. 아이의 경험이 아이의 몸을 움직였고, 마음을 기울였다. 그 경험이 의미 있고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어른들의 직 간접적인 경험으로 저마다 정리된 내용과는 별개로 아이는 자신의 경험으로 다른 아이들을 초대한 것이다. 한참을 그곳에서 놀았다. 등을 쓰다듬어주는 방법과 강아지와 재미나게 노는 방법을 이미 익힌 녀석의 손과 움직임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웠다. 그것이 배움이 아닌가 한다.


어디에서 배움은 일어나는가? 그것은 믿음과 신뢰, 그 안에서 아이가 최대한 자신의 관계망을 확장하는 순간 일어나는 듯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일하면서도 늘 잊고 있는 순간이다. 그저 기다리고, 그저 지켜보면 아이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이 순간을 살아내는데 말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건,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아이의 시간을 온전히 지켜주고 안내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조금은 더 기다려주고, 조금은 더 지켜봐 주는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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