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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25. 2024

커피 볶을 때 네 생각을 해

드립 커피를 내리며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면 충동적으로 집을 나서고 싶어. 이제 봄이니까. 봄바람이 살랑이는 동네 공원, 그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 조금 떨어진 영화관 등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봄 햇살은 조금 더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라고 충동질해. 부암동길, 이화동 벽화마을, 창덕궁, 수원 화성, 그리고 춘천 등 이때 내 작은 백팩 속에는 아이패드, 똑딱이 카메라, 텀블러 속에 담긴 원두커피가 꼭 들어있어.

약간 쌀쌀한 날이기에 아직 봄을 느끼긴 어렵지만 봄 꽃향기를 커피 향으로 대신하기 위해 커피 볶는다.

깊은 향과 신맛이 뛰어나 유럽의 왕실에서 즐겨 마셨다는 탄자니아 AA야. 
겨울까지만 하더라도 가정용으로 쓰는 로스팅 기계가 있었는데 맛이 갔어. ㅠㅠ. 할 수 없이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뚝배기에 볶는 거야. 생두를 집어넣고 주걱을 가지고 열심히 휘저으면 연두색의 생두가 갈색으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짙은 밤색으로 변하는데 이때 팝콘이 튀겨지는 것처럼 생두가 탁탁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크랙이라고 해. 커피가 볶아지며 나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호흡이 곤란하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은 커피 향 때문이야.

<마누라가 없으니까 가능해. 알면 쫓겨난다 ㅠ>



사람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평가받을 때, 그가 이룬 업적보다

“어떤 향기 있는 삶을 살았느냐?” 
를 더 중히 여기잖아. 

커피를 볶으며 가끔 자신에게 물어봐.

“너는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니? 혹시 악취?”
“설마,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가끔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뭐 그렇게 유난을 떠니?”

라고 반문하는 친구도 있어. 맞아!.
누군가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는 유별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커피 한잔이라는 결과물만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커피를 볶으며 배우는 삶의 아름다움과 교훈이 있어. 비록 매장에서 파는 커피보다 맛은 없고, 서툴지만 내가 만들었다는 것이 소중한 거야.



나만의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의미나 가치 면에서 아주 큰 것으로 생각해. 남들과 다른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야. 그리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드립 커피는 기본으로 두 잔을 내려야 해.
한잔은 너무 양이 적어 맛 내기가 어렵거든.
혼자 있으면 한 잔은 버려.
서울의 숲 갔을 때였나?

예가체프 내렸는데 좋아했던 그 표정.
네가 생각이 날 때도 이때야.



커피 한잔 같이 마시며 책과 영화 이야기하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잖아!!.

아! 우리 아들이 영화 본다고 빔프로젝터도 사놨는데 몰래 봐도 좋을 것 같아. ㅎㅎ
서울은 아직 봄을 느끼기 어렵지만 너 있는 곳은 벌써 유채꽃에 매화가 피어있는 사진을 봤어.  자신만의 멋으로 피어난 꽃들처럼 우리의 삶도 예쁘게 꽃 피워야 하는데, 오늘 마신 커피처럼 깊은 향도 있어야 하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이 시 기억하지?
서로에게 예쁜 사람으로 기억되자. 안녕^^

이 노래 같이 듣고 싶어.
어제 언급한 Laura Fygi의 'How Insensitive'야
근데 가사는 끝나 버린 사랑에 관한 거네……. ㅋㅋ



https://youtu.be/4EsESjwORs8?si=6sbPgj3rCyOxr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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