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언즈에서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스카이 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은 호주 여행 전체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었다.
이젠 케언즈에선 할 만한 건 다했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돈은 조금 더 내더라도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의 여름은 너무도 덥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 책을 펼쳤다.
캐언즈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할 예정인데 브리즈번까지 한 번에 가긴 힘들 것 같고, 중간에 한 번 들를 곳을 찾다가 타운스빌이라는 곳을 선정했다.
여긴 버스를 한번 타면 기본이 8시간이 넘는다. 브레이크 한 번쯤 밟아 속도를 줄인 경우도 없이 그냥 8시간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 버스에 화장실도 있고 영화도 상영한다. 기사님이 있는 쪽에 작은 티브이가 있었는데 소리는 자리에 이어폰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타운스빌로 가서 한국 사람들을 더러 만났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몇 번 더 볼 정도로 친해진 사람들이다.
숙소 리셉션에서 얘길 하다 보니 뒤에서 지켜본 여자분이 한국분이시냐고 물어봤다. 어찌나 반가운지 묵언 수행을 마친 스님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한국말을 쓰면서 얘기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디 다녀왔냐,
숙소는,
비용은,
제일 좋았던 곳은?
뭐 이런 얘기만 해도 하루 쟁일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숙소에서 케첩 통에 튼 초장으로 밥 비벼 먹고 있다가 나에게 케첩을 밥에 비벼먹냐고 물어본 녀석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좋긴 했지만 조금 피곤해지긴 했다.
거절도 잘 못해서 그냥 함께 다녔는데 좋기도 하면서 귀찮기도 했던 것 같다.
타운스빌에서 다음 코스로 과감하게 골든 코스트로 선정했다. 정말 과감했던 것이 장작 16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계속 운전을 하시다가 정말 허허벌판에 작은 휴게소 하나가 있었는데 늦은 밤 그곳에서 운전기사님이 교대를 했다. 참 신기한 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갈 곳이 없는데 여기서 내려 교대를 한다니, 그냥 다음 교대 할 버스를 기다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엉덩이도 아프고 창가 쪽이라 화장실 가기도 불편했다. 16시간 만에 도착한 곳 골든 코스트에서 숙소를 구하고 좀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싸게 구한 방에서 2층 침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15명이 쓸 수 있었던 아주 아주 큰 방이 있었다. 옷 갈아입을 공간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다 같이 잔다. 이건 아무래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룹 별로 다니면서 마음이 맞으면 함께 이동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땐 혼자 노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아무리 멀리 걸어 나가도 바다의 깊이는 내 무릎까지지만 파도는 내 머리 위로 나를 덮는다. 그러면 바닷속에서 뱅글 돌면서 롤러코스트의 회전부를 도는 것과 같다.
그런 재미도 함께 즐기면 너무 좋다.
혼자였다면 그렇게까지 나가 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어느덧 꽤나 모인 한국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밤에 한산한 장소에서 둥글게 앉아 이야기하며 맥주를 마셨다. 여행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던 그날 밤은 너무 즐거웠다.
그러다 호주 주민 한분이 쓰윽 지나가며 눈인사를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재미난 이야기를 해줬다.
호주에서는 밖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불법이란다!
케언즈에서 벤치에 앉아 맥주를 그렇게 마셨는데.. 그래서인지 자유분방한 청년들이 그렇게 꼬였나 보다.
저렇게 눈인사를 하고 가서 경찰 아저씨 손을 꼭 잡고 온다고 하더라.
여행객들이 길 위에서 당당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걸 보는 주민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우리들의 이야기보따리는 날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중 나랑 나이 차이가 꽤 났던 누나가 있었는데 여기 오면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다고 한다. 혼자 가기엔 심심할 것 같다면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동의를 했는데, 그 누나는 점심때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니 아침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알겠다고 했고, 잠에 들었는데 눈을 감자마자 갑자기 누군가 날 깨웠다.
"같이 가기로 했잖아.."
약속을 저버릴 순 없으니 겨우 일어나 옷을 주섬 주섬 입고 따라나섰다.
걸어서 가는데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고 언덕길도 있었다.
그래도 가는 길이 예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오니까 좋았다.
오길 잘했다.
호주 동쪽 끝
여긴 잘 모르겠지만 동쪽 끝같은 느낌
벤치에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대 후반이었던 그분은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 생각이 없던 나와는 다르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그 시점에 많은 고민을 했지..
하루하루를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열심히 살아가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분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난 놀면서 살고 싶다."
그때는 무슨 말인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지는 한마디이다.
그냥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이 고민하고 힘든 결정들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20대 후반에는 누군가가 지정해 준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니까
취업, 결혼 같은 것들이 줄줄이 따라올 것이니 하나를 해결해도 다른 하나가 다가온다.
호주의 동쪽 끝을 방문했고 그 끝에 서있는 나를 촬영해 주신 누나의 얼굴도 기억나진 않았지만 작은 나무 같은 풀 숲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했던 느낌은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