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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석 Nov 04. 2024

떠나기 전

첫 해외여행의 설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20년 전, 대학을 휴학하고 사촌 누나의 권유로 입대 전에 해외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뭐 특별한 계획도 어디를 가야 좋을지도 정해 놓지 않았고 대충 200만 원 정도 모으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고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낮에는 PC방에서 일하고 저녁엔 과외를 해서 모으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행은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쓰느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뭐 부모님께 무리하게 부탁하지 않고 나름 기특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달을 일하면서 어디를 가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 사촌 누나 본인이 가보고 싶은 곳을 추천한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시절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뭐 특별히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었던 게 아니라 “해외여행”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기에 추천받은 호주를 가기로 했다. 영어권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도 영어는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벌어놓은 돈 일부를 투자하여 영어회화 학원을 한  달간 다녔다.

그때 바짝 열심히 해둘걸..


한 달의 시간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영어 문화권으로 여행을 가는데, 내가 영어 회화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에 이상한 여유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왠지 그런 행동으로 시간과 돈을 날린 것 같지만, 마음의 짐을 덜어 내기 위한 비용인 것이다.


애초에 나란 사람은 뭘 꼼꼼하게 준비해서 처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준비도 뭔가 어설펐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항공권은 사촌 누나의 지인을 통해 구매해서 저렴하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런 다음 큰 배낭을 하나에 입을 옷과 초장, 고추장, 김치, 컵라면, 필름 카메라와 필름 20통.. 대략 기억남은 건 이 정도인 물건들을 넣었다. 나름 인터넷이라는 공간이나 해외여행을 조금이라도 다녀본 사람들에게 1~2주 지나면 고추장이나 김치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나름 긴 여향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챙겨야 할 물품들이겠지. 김치, 초장은 한국 음식이 엄청 생각나서 먹었다기보다는 자금 운영이 어설퍼 여행 후반에 자금을 아끼려고 숙소에서 밥에 초장을 비벼 먹었다. 숙소의 공용 식당 테이블에서 햇반이나 밥에 초장을 비벼 먹곤 했는데, 식당에 들어온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조금 이상했는데, 이후 한국 사람이 나에게

“왜 밥에 케첩을 비벼 먹는 거야?”라고 했다.

아..

초장은 케첩 통에 들었고, 빨간 액체였으니 외국에선 케첩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장이라고 이야기하니 아~ 하더라. 물론 외국 사람들에게 설명하진 않았다.


 또 하나의 추억할 물건은 카메라이다. 그 시절에 카메라는 20~24장을 찍을 수 있는 필름을 넣고 한 장 한 장 찍어야 했다. 그리고 찍은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인화를 해봐야 알 수 있었다. 필름 20통 정도를 들고 갔는데 눈과 마음으로 여행지를 담아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서 가져간 필름의 반 정도 쓴 것 같다. 그리고 인화를 해서 건진 사진이 대략 50장 정도이다. 아직도 보관하고 있지만, 볼 때마다 나의 젊은 시절 여행의 많은 조각들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의 기억을 사진으로 보관해 두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보관함에서 꺼내봐야 했다. 기억 저편에 어딘가에서 빙봉(인사이드 아웃, 주인공이 좋아하던 어릴 적 캐릭터)처럼 사라져 버렸다.

옛날 필름

다른 물건은 없으면 가서 사면 되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자. 옷만 해도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누가 봐도 해외여행이라는 모르는 사람처럼 산악용 큰 배낭에 필요하다 싶은 모든 것을 담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꾸역꾸역 넣다가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다 사람 사는 곳이니 가면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ㅎㅎ


마지막으로는 여행 계획이다. 애초에 이렇게 장기간(약 40일?)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냥 무작정 서점의 여행 코너에 가서 가장 맘에 드는 호주 여행 책을 샀다. 그리고 처음 갈 시드니에서 할 만한 것들, 숙소, 먹을 것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꼭 가봐야 하는 장소에 표시도 하는 꼼꼼함도 발휘해 보았다. 그리고 시드니에서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은 시점에 또 책을 보고 정하자하며 자유로움을 가장한 게으른 계획을 완성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배경의 AI 이미지

예전 친구와 한 국내 여행도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다녔었다. 알차게 여행을 하긴 어렵지만 낭만은 충만했었다. 지도 앱은 당연히 없고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로 가서 그때그때 시간에 맞춰서 이동했었다. 호주도 부딪히면서 낭만 있게 한번 해보자!

그런 기억에 준비를 너무 느슨하게 했었다. 일생일대에 한 번뿐이란 생각을 했다면 조금만 더 치밀하고 알차게 준비해서 더 많은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봤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타는 비행기와 내가 아는 어느 누구와도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날 수 없는 낯선 땅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10시간의 비행과 도착했을 때의 그 새로운 환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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