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써서 싼 배낭을 메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처음 가는 해외 여행이다. 비행기를 타러가는 길에서 부터 낯선 땅에 도착해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내 발로 딛고 있는 땅과 햇살 모든 것이 신비로웠다. 모든 순간 순간이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남달랐다. 지금의 나의 아이들이 말도 잘 못하는 아기였을 때 처음 탄산 음료의 짜릿함과 달콤한 맛을 동시에 느끼며 눈살 찌푸리는 모습을 보면 처음이라는 것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한다.
인천 공항 내부의 쇼핑몰은 나에게 큰 설레임은 주지 못했다. 내가 관심이 있을 만한 상품도 없었다. 공항은 내가 처음으로 이런 멋진 계획을 세우고 해외 여행을 간다는 대견함과 여행지에 대한 설레임을 많은 시간동안 느끼게 해주었다. 비행기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왔다갔다하며 담배를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태웠다. 모든 시간 1분 1초를 온몸으로 느껴야했다. 지금이라면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그 때 그 시절에 나는 시간과 아주 친밀하게 어울렸다.
여행의 시작이다보니 그 시간이 더 더디게 흘렀던 것 같다. 그렇게 기다려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들려 다른 비행기를 5시간 정도 기다렸다. 항공사 지인의 혜택으로 가장 짧은 대기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5시간 동안 근처에 나갈 수 있다고 했지만, 5시간은 나갔다가 조금만 헤매도 큰일날 것 같은 걱정이 들어 공항에 남아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뭐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고, 무료하다 싶을 때쯤에 비행기를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인천에서 홍콩으로 갈때는 없었는데 홍콩에서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는 좌석마다 스크린이 있어서 영화를 보거나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었다. 홍콩에서 호주까지는 내 기억으로는 대략 7~8시간, 자리도 좁고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잠을 푹자면 좋았으련만 그놈의 설렘은 푹 잘 수 있게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영화를 보려해도 자막이 없다보니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다. 화면에 이것 저것 만지다보니 비행기가 어디 쯤 날아가고 있는지 얼만큼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지 나오는 화면을 제일 재밌게 본 것 같다. 그러다 억지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여행책을 꺼내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에서는 길찾는 용도로 각 도시의 지도 말고는 좋은 내용의 가이드가 별로 없었다. 직접 부딪히며 알아내서 진행한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책은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출구 방향으로 실수 없이 이동했다. 이제 정말 호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하물 검사만이 남아있었다. 20년이 지난 시점에 아직도 수하물 검사라는 단순한 일이 기억나는 걸보니 단단히 화가 났었던 모양이다. 여행의 시작을 망친 기분이 아직도 나의 마음을 복잡하고 더럽게 만든다. 조그만 녀석이 크고 무거운 배낭을 들고 들어왔으니, 시비가 걸고 싶었던게 아닌가 한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맨 먼저 검사한 것이 컵 라면이었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처럼 칼로 컵라면의 뚜껑을 십자로 구멍을 내서 스프를 꺼내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컵라면을 몰랐던 사람들도 아니었을 것이고, 그렇게 굳이 칼로 쑤셔서 내용물을 확인해야 했었는지 지금이라도 따져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고나서 경고 문자가 적힌 테이프 같은 걸로 붙여서 십자 구멍을 막아주었다. 그 다음 물건은 김치다. 이 녀석들은 칼을 또 쳐 들었다. 김치를 지금 칼로 뜯는다면 대참사다. 정말 최선을 다해 김치를 설명하려다 떠오른 단어 하나가 “베지터블”이다. 다행이도 김치 포장 바닥에 투명으로 되어 있어서 내용물이 확인을 하고 “음..”하더니,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게 뭐라고 안도의 마음이 든건지.. 몇 가지 더 보다가 커피 믹스가 나왔는데, 이젠 스슬 인내심이 바닥이 나려고 했다. 그래 너희들 맘대로해라 뜯던 말던, 그냥 버릴란다 하는 마음을 먹으니, 그제서야 더이상 데리고 놀 재미가 떨어진 장난감처럼 짐을 몇 개 배낭에 넣어주며 들어 가란다. 밖으로 쏟아져나온 짐을 담다가 마지막으로 내손에 든 뚜껑이 십자로 난도질 당하고 이상한 경고 메시지의 빨간 테이프가 붙은 컵라면은 가방에 넣지 않고, 손에 들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진 휴지통에 던졌다. 그런걸로 기분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더이상 그 컵라면을 갖고 가서 먹는다면 여행을 다니면서도 생각나서 더 열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 호주 공항 내부로 들어왔는데,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 뭔가 큰일을 마무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드니의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이제 어떻하지? 뭘해야할까? 난 근처 의자에 앉아 여행 책자의 “시드니”편을 펼쳐 숙소를 찾았다. 숙소를 찾는다 한들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했다. 인터넷도, 편의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낯선 공간이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책을 뒤지다 숙소를 정했다. 정한들 어찌하랴.. 전화를 해도 뭐라해야할지 모르겠고 그냥 공항에 앉아 이 낯설음을 하염없이 느끼고 있었다. 하.. 왜 왔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 2시간정도 지났을 시점에 저 멀리서 해가 지고 있었다.
갑자기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항도 한산해지고 해도 지고 있었으니,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노트를 꺼내 “I would like to make a reservation…”라고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페커스 중에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었다. 공중전화 앞에서도 한참을 서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동전을 넣고, 전화번호를 눌렀고 신호음이 들려왔다. 2~3개 문장만 적어 놓은 걸로 모든 예약을 위한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욕심쟁이인 나는 전화가 걸리는 동안 종이만 뚫어지게 보고 또 보았다. 누군가 전화를 받았고,
“헬로~”
하자마자 녹음기로 녹음해 놓은 음성이 테이프 불량으로 늘어지는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아이.. 우..ㅡㄷ ㄹ..ㅏ이..크”
정말 난 큰일났다는 생각을 했을 무렵 전화기 너머로
“한국분이세요?” 라는 답을 받았다.
나중에서야 내가 왜 그 숙소를 정했는지 기억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 진작에 전화할껄.. 이게 뭐라고 몇시간을 공항에서 넋 놓고 앉아있었는지.. 다급하게 “네, 저.. 숙소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씀드린 후, 픽업까지 해준다는 말에 갑자기 많은 걸 해결한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인상 착의를 설명드리고 조금 기다리는 말에 긴박했던 마음을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저물고 있는 해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주변의 허허벌판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20분쯤을 기다렸을까, 왠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첫 해외여행이고 나에게 외국인이 말을 건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서, 무조건 “No”를 외치며 손사래를 쳤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돈달라하는 애들이 많이 붙었었다. 뭔가 나에게 요구하는게 있으리라, 그분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곤 다시 나에게 왔다. 그리고 나에게 그 숙소 이름을 말해줬다. 당연히 한국분이 올꺼란 생각을 했던 나는, 또 한번 여기가 외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조그만 차에 나의 큰 배낭을 싣고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건물이고 차도 그리고 사람들도 모두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신기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밖에만 바라 봤는데도 너무 행복했다.
두리하우스 벡페커스
숙소는 킹스크로스라는 지역에 있었고, 책에는 시드니 최대 환락가라고 소개해두었다. 뭐 특별히 경고도 없고 숙소는 한국분이 운영하며 가격도 저렴했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리셉션에는 다행이 한국분이 계셔서 방 안내를 받았고 식당에서는 밥은 무료이지만, 마지막에 먹은 사람이 밥을 지어야하는 규칙이 있다. 이걸 영어로 들었으면 뭔가 많은 실례를 할 뻔했을 것이다. 함께 쓰는 방이고 도난이 있을 수 있으니, 물건관리 잘하라는 당부를 받으며 방에서 짐을 정리했다. 시드니에서 머문 기간이 많아 많은 사람들을 그 숙소에서 만났다. 처음에 만난 사람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숙소에 머문 기간이 조금 되는 분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던 것 같다.
이제 정말 여행의 시작이다.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여행해보자. 그리고 소중한 나의 여행책을 꺼내 다음날 일정을 만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