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보다 심각한 불치병
중독자는 수치심을 또 다른 수치심으로 덮으려는 비합리적 시도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더욱더 수치스러워진다. 뭐가 그렇게 수치스럽나, 수치스러우면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 중독에 빠져 보지 않는 사람들은 중독자들이 느끼는 수치심의 깊이를 알 수 없다.
수치심이라는 마음의 상처가 몸에 나는 상처처럼 약을 바르고 상처 밴드를 붙일 수 있는 거라면 중독이 암보다 더한 불치병이 됐을 리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몸에 난 상처도 완벽하게 아물지 않고 한 번 삐끗했던 다리는 잊을 만하면 다시 삐끗해 이전보다 더한 통증을 유발한다. 하물며 물리적 치료가 불가능한 수치심은 오죽할까.
사회역학 학자 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은 ‘불평등 트라우마’에서 불평등 이슈를 깊이 있게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풀어 간다. 드레스업한 사람들로 꽉 들어찬 홀 밖에서 한 남성이 여성에게 “굉장한 파티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불안정해.”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짓고 있는 두 남녀의 대화를 묘사한 시사만화는 누군가에게 보이는 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픈’ 현실을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묘사했다.*
이어 시작되는 첫 페이지는 오프라 윈프리의 스타일 코치 마사 베크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해 더욱더 뼈 때리는 메시지를 던진다. 마스 베크 “진짜 적은 수치심과 두려움, 잔인한 평가”라며 “파티에서 살아남으려면 재치와 매력적인 허벅지, 친분 관계, 재산과 같은 휘황찬란한 무기로 완전히 무장해야 하며 의상의 선택에서부터 담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동이 두려움에 떨면서 맞서는 방어”라고 표현했다.**
내가 중독자라고 자신을 칭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가 치열한 패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가 필요해서였다. 집에서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수치심으로 깊게 팬 상처와 흉을 가리기 위한 갑옷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매번 부족했다.
패피들로 넘쳐나는 패션 업계에서 나의 수치심은 매일 최신 버전의 수치심으로 자동 업로드됐고 그때마다 늘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트렌드를 흡수하는 패션계는 나처럼 매일 새로운 무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비옥한 토양이었다. 사실 그 찬란한 빛 이면에 모든 생명체를 잠식하는 어둠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굳이 들춰보려 하지 않았다. 내 현실이 그 어둠보다 더 핏기 없이 초라했기에, 무엇보다 그런 어둠조차도 찬란한 빛이 있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파괴적인 어둠조차 동경했다.
* ** 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 '불평등 트라우마'. 도서출판 생각이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