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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Oct 30. 2022

PART 4. 과시 혹은 자기충족적 욕망

100명의 쇼핑중독자의 1000가지 이유

쇼핑중독을 논문 주제로 정하고 항목별로 분류한 폴더에 수십, 아닌  단위는 되는 수많은 국내외 논문을 끊임없이 쌓고,  쌓고 있다. 국내 논문에서 쇼핑중독 관련 연구가 수적으로는 물론 다루는 방향이 제한적이다. 결국 구글과 학교 도서관 DB 오가며 비슷한 키워드를 연달아 입력하고 집요하게 추적해 무수히 많은 해외 논문을 찾아 무작정 저장했다.   


폴더는 물론 뇌까지 정리되지 않는 정보로  채워진 상태에서 논문 계획서를 작성했다. 자료가 쌓일수록 쇼핑중독 주제가 적절한 선택이었을까, 계속 자문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래도 해보자, 하고 싶다, 해야 된다.”라는 결론이었다. 대충 작성해 제출한 논문 계획서를 보고 교수는 “여러 논문을 봤다고 하는  그런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네요.”라며 군더더기 없는 평을 내렸다. 어디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해하다 패션계에서 쇼핑중독과 함께한 나의 생사고락 성장사를 지켜봐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패션 쪽에서 쇼핑중독은 흔하잖아. 그런데 막상 패션계를 벗어나면 쇼핑중독이 그리 일반적이지 않더라고. 답답해서 정말.”이라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리고 본격적인 내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그 선배는 나와 다른 성향이다. 내가 패션계에서 다운타운에 속해있다면 그 선배는 업타운이었다. “선배도 쇼핑중독이잖아. 사실 지금도 그렇지. 선배는 왜 쇼핑중독이 됐어?” 뜬금없는 나의 돌발질문에 선배는 당황하지 않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했어. 그런데 계기가 있었기는 하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사립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애들이 내 옷을 뒤집어서 브랜드 라벨을 확인하는 거야. 그냥 다짜고짜. 다행히 그때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비싼 브랜드였거든. 그 전부터 옷 사고 입는 걸 좋아했는데.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때부터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즐긴 것 같아.”      


선배의 생생한 답변은 어린 시절을 지나 청년기로 이어졌다. “일하면서는, 너도 알잖아. 패션 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게 해외 사업을 하다 보니. 프랑스, 미국 사람이 성향이 좀 달라. 프랑스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뭘 입든 크게 상관 안 하는데, 미국 사람들은 스타일이 좋다 싶으면 세세하게 평가를 늘어놔. 그리고 얼마나 칭찬하는지 알아. 그러니까 더욱더 신경을 쓰지 않을 없지.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사게 됐지. 핑계지. 그런데 핑계가 좋잖아.”


 선배는 타인의 찬사가 쇼핑중독으로 이끈 동력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받은 부러움의 시선은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패피들의 집산지 패션계 중심에서누락되지 않은 것은 물론 찬사를 끌어냈다.  


그렇다면 수치심과 과시가 쇼핑중독의 전부일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선배는 전혀 다른 동기로 한때 명품을 사들인 이력이 있다. 그 선배는 “내가 쇼핑중독이었나, 그래 뭐 쇼핑중독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네.”라며 또 다른 흥미로운 사연을 풀어냈다. 디자이너인 그 선배는 자신만의 확고한 패션관이 있다.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옷을 만드는 사람의 창의성과 열정을 존중한다. 그래서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제아무리 비싸도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냥 마음에 드니까. 사는 거지. 그냥 그게 좋았어. 그래서 사는 거야. 다른 이유가 뭐가 있어.” 이 선배에게 쇼핑은 디자이너로서 자기 세계를 공고히 하는 습관적인 노력이었다.  


두 선배의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을 즐긴 선배, 자신의 취향에 충실했던 선배, 그들 모두 명품이라고 불리는 명품 브랜드 제품을 사들인 나와는 소위 ‘급’이 다른 사람들이다. 나는 쇼핑중독 연구자로서 선배들의 중독 이력만큼이나 현재 그들의 옷장 역시 흥미로웠다.


타인의 시선을 즐긴 선배는 불과 몇 달 전 우연히 옷장을 치우다 곰팡이가 핀 명품 브랜드 가방을 한 자루나 버렸다. 거기서 생존한 가방들을 딸과 동생에 나눠주고 명품 가방들과 손절했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선배는 디자이너에 대한 경외심으로 제품을 구매한 만큼 몇 번의 이사에도 옷과 가방들을 잘 지켜냈다. 최근에는 오래된 옷들을 다시 꺼내 입기 시작했다.


쇼핑중독이라는 하나의 중독적 진단의 이면에는 이렇게 저마다 다른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월감이, 다른 한편에서는 몸에 밴 취향이 이유다. 두 선배 모두 쇼핑중독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각자 자신을 잘 지켜내고 여전히 자신들의 좋아하는 일을 하며 패피로 살고 있다.   


이 선배들의 중독 여정을 보면 쇼핑중독이 병리적 중독증으로 규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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