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사랑하는 방법
말도 안 돼. 나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돼.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절대 안 돼.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날들.
왜 너에겐 되고 나에겐 안된다고 하는 오류에 빠져 살아왔을까...
빠져나가기 힘든 깊은 바다와 같은 그 숱한 오류들 사이에서 수영도 못하면서 허우적대며
나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그 절망이 쌓여갔다.
쌓인 절망들 틈으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를 발견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나조차도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내가 원하는 빛'을 잃었을 때,
그 곳에서 어떤 희미한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다른 색의 빛이 몇 개 더 흐릿하게 보인다.
내게 쌓인 절망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빛'이 되어 힘겹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을 보았다.
나를 보았다.
드디어 내가 나를 본 것이다.
내가 나를 보기 시작하니,
쌓인 절망들만큼이나 점점 다채로운 수많은 빛들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빛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빛들을 내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절망과 고통과 공존하며 '그냥' 살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눈물이 흐른다.
나의 운명을 사랑하게 되었다.
절망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정당화시키려는 진지한 시도가 만들어 낸 결과다.
절망은 삶을 덕망과 정의와 이성으로 살아가고, 책임을 완수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 결과로 생겨난다.
나는 절망이 다시 은총으로 바뀌는 것, 그리고 우리 삶의 껍질을 벗김으로써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자주 체험하였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건강'해질 수 없으며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물론 내게도 고통이 없는 날이란 드물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또다시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고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
다시 밝은 빛을 보고자 한다면 슬픔과 절망을 뚫고 나아가야만 한다.
헤르만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