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나면..., 안녕달]
오늘 새벽은 촉촉하게 비가 온다.
빗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자고 있는 아이 방에 살며시 들어갔다.
이불과 베개를 정돈하며 새근새근 숨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마를 쓰담거린다.
괜히 토실토실한 팔도 한번 주무른다.
이제 초6.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 앞에서
많은 생각이 오가는 요즘이다.
잘 키웠나...
미련 없이 육아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남은 미련이 없는지 자꾸 점검하게 된다.
중학생이 되면 수학이 특히 어려워진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초등시기에 영어는 끝냈다더라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내 아이가 보이지 않고 주변이 보이려 한다.
아이 어렸을 때부터 늘 집에서 미술활동과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남자아이들 틈에 껴 꾸준히 숲 체험을 보냈다.
6학년이 된 지금까지 숲 체험을 하고 있으니,
공부가 아닌 다른 방향에서 내 나름의 교육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우연히 배우게 된 발도르프 교육.
자연 속에서 아이마다의 속도를 존중하고,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감각에 집중하는 교육.
여건이 된다면 독일에 가서 살고 싶을 만큼 나는 그 교육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발도르프 교육은 내 육아 방향을 결정했다.
그런데 중학생을 앞두고 있는 지금,
발도르프 교육, 숲 체험과 같은 교육은 환상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
국영수는 진도가 있고 배운 내용을 테스트할 수 있다.
하지만 발도르프 교육, 숲 체험은 테스트 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무엇이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와 흥미 위주의 독서를 즐기고 있는 딸아이에게
독서 후 그 어떤 확인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학교 선생님이 적으라는 독서록이 아이가 독서를 하고 난 유일한 결과이다.
왜 자꾸 확인하고 싶을까?
아이의 내면에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성장을 눈에 보이는 점수로 확인하고 싶은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행여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뒤처질까 봐.
다른 아이들과 발맞추어 나아가야 하니까.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아이의 성장을 점수로 확인하고 싶게 할 것이다.
엄마로 산다는 것.
내 역량보다 더 크게 타오르는 사랑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사는 일이다.
자칫하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나를 태워버리고 아이마저 태워버릴 수 있다.
아이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마음 아파하고
행여 아이보다 앞서갈까, 내가 이끄는 방향이 잘못된 방향일까 봐 노심초사한다.
나의 작음이 아이의 한계 없는 성장을 방해할까 봐 두렵게 하는 엄마라는 책임감.
나는 과연 발도르프 교육의 환상 속에서 살아온 것일까...
나는 환상 속 유토피아를 꿈꿔왔는가...
하지만 깍지모모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확신하는 건,
아이 마다의 환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은 그 소중한 환상을 절대 건드리지도 방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환상 속에 함께 참여하여 더 넓은 상상의 나라로 훨훨 날아가야 한다.
인생의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언젠가 그 환상은 사라지고 현실만이 남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신나게 놀았던 그 상상의 나라는 나의 내면 어딘가를 구성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출산해서
내 품에 안았을 때를 생각해 본다.
작은 생명체.
엄마의 품에 자신의 작은 온몸을 온전히 맡겼던 그때.
그 여리고 여린 아이를 내가 다시 만난다면......
만일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지만,
나는 더욱 힘써 아이의 환상에 참여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림책 [왜냐면...] 속의 엄마처럼.^^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다이애나 루먼스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보리라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 원문 시 링크
https://www.dianaloomans.com/child.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