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
인간이 얼마나 불순한지는 기원전 5세기 중엽 실존 인물인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에 잘 드러난다.
“우리는 거짓을 말할 때나 진실을 말할 때나, 결국 노리는 바는 하나다. 거짓말로 상대를 이해시켜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때는 거짓말을, 오리혀 진실을 말해 이득을 얻고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더 믿게 하려는 목적에서 진실을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일은 같지 않더라도 바라는 목적은 같다. 아무 득이 없다면 정직한 사람도 거짓말을, 거짓말쟁이도 정직한 자가 될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이 정도의 심리는 간파되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은 득이 되도록 처신할 뿐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타인은 나를 모른다 (소노 아야코 에세이)에서
얼마 전 아내의 조심스러운 권고가 있었다. ‘말의 수위를 조절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곤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본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까?
내가 생각하는 진실을 고해서, 누군가가 날 더 믿는다 해서, 도대체 내게 어떤 이득이 있길래?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제발 본질을 보고, 연구개발해야 한다,
나랏돈 바르게 써야 한다,
세상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투명해야 한다,
잘못은 고치면 되고,
모자람은 보완하면 된다.
재촉 말라,
공짜는 없다.
믿어라,
희망을 보라,
책임은 결과로,
불법과 탈법은 원 아웃이면 충분하다,
일 잘하는 것과 윤리는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다,
…
돌아보니 ‘현실에선 웬만해선 이룰 수 없는 것’이 구나하는 깨달음이 든다.
참 빨리도 안다.
‘아!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야?’
이제 현실로 돌아가 차분하게 살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