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겸손하기
내일은 1년 만의 출근길.
미리 가서 이것저것 살펴 빨리 적응해 일손을 돕겠노라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아, 무지하게 덥구나!'
그래도 짜증이 나거나 하지는 않다. 왜 그런지 몰라도 과거의 나와는 사뭇 다르다 느낀다.
'이 정도면 벌써 짜증이 이만큼 올라왔을 텐데...'
그나마 오랫동안 쉰 덕분이려니.
확실히 호주와는 사뭇 다른 습기 때문에 더위를 더 느끼는 것이리라.
내가 가본 곳들 중 아랍이나 호주의 경우 물론 위치마다 다를 순 있지만 대체적으로 건조하다. 그래서 아무리 뜨거워도 불쾌감을 느끼기란 어렵다. 그늘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춥기까지 하다. 반대로 추울 때면 영하권이 아니더라도 무지하게 추위를 느낀다.
그럼에도 서울에서의 대중교통이용은 내게는 늘 천국과도 같다. 게다가 한강을 건널 때면 마치 나만을 위한 정원이라도 되는 양 마음이 웅장해진다.
직장이 있는 대전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동서울로 향했다.
내가 5년 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서울 살러 왔을 때 느꼈던 것을 또다시 느낀다. 호주를 다녀와 그런가 더더욱 그런 듯하다.
'도대체 어디를 저토록 서둘러 빨리 가야 할까?'
'사람이 채 내리지도 않았는데 왜 저토록 급히 타려 할까? 그것도 곱게 차려입은 남녀노소들이 말이다'
지금이야 그런가 보다 하지만 처음엔 굶주린 짐승과도 같은 야만인으로까지 보였다. 마치 식사를 하기 위해 즐거이 옹기종기 모여든 자리에서 누가 뺏어라도 갈까 개걸스레 배에다 욱여넣는 시합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그냥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정도의 느낌이다. 뭐 다 그런 건 아니잖아 하고 위안도 해보고, 내가 좀 까칠하지 하며 스스로의 부적응을 탓해보기도 한다.
이런들 저런들 귀국한 지 단 3일 만에 알아챘다.
한국은 정말 빨리 변한다.
귀국 후 핸드폰 앱의 처리속도가 갑자기 빨라졌고, 핸드폰 안에서 안 되는 것이 없어졌다.
다만 나는 아직 못 따라가고 있다 느낀다.
커피 주문조차 빨리 안되니 살짝 조급해질까 걱정하다 이내 평정을 되찾고, 물러나 천천히 꼼꼼히 살핀다.
안될 것이 없다.
미리 출근한 이유는 다름 아닌 차량을 복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지역 안에 있다 보니 안심하고 둘 수 있고, 대전에 있으니 서울까지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
딱 봐도 낡아 보인다.
보험의 필요를 느끼는 순간이다.
사실 자동차 충전을 위한 배터리가 있지만 잊어버렸다.
가지고 왔으면 무겁기는 해도 많은 불편을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무더운 날씨를 뚫고 찾아와 주신 긴급출동 선생님 덕분에 구사일생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그냥 교체가 좋았을걸...
완전 방전상태라 1시간을 달려야 하지만 실수로 시동이 꺼져버렸다.
이런 가시는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다시 오셨다.
이제 보니 휘발유도 없다. 주유소까지 견인을 했다.
다시 시동이 꺼졌다.
결국 배터리를 갈았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선생님과 나는 함께 비를 쫄딱 맞았다.
마치 중국의 작가 이화의 인생이란 작품을 쓰려는 것인가?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를 보냈더. 그나마 귀인을 만나 구사일생 벗어 낫으니 망정이지.
비에 젖은 채 몸을 녹일 곳으로 근처 사우나를 찾았다.
이게 얼마만인가?
찜질방에선 샤워 후 라면을 때렸다. 내 몸을 뜨겁게 때렸다.
신기하게도 호주에서 라면을 먹으면 배가 아프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귀국 후에는 맵지 않다.
일요일이라 찜질방에 사람이 거의 없다.
찜질방 한쪽에 자리를 넉넉히 깔고, 긴 숨 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