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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집 찾기

내가 원하는 삶

by F와 T 공생하기

이제 곧 귀국이다.


갑갑한 한국 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혀오기도 하지만 서울과 세종(대전)을 오가는 현실 주말부부 생활은 빠듯하기도, 다이내믹하기도 해서 금방 잊을 듯도 하다.


이곳 호주의 생경한 풍경의 이색적 아름다움에 빠졌다가도 곧 돌아갈 서울의 1000년 역사를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감동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다.


사계절 아름다운 고궁, 도심 속 계곡을 자랑하는 북한산 자락, 서울 도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남산은 물론 그리운 먹거리들로 갈치찌개, 회, 10첩 반상, 새벽 동대문의 동태찌개, 북촌과 서촌의 한옥들 사이로 옹기종기, 왁자지껄 사람들, 시원한 한강공원.




이곳 캔버라와 마찬가지로 계획도시인 세종은 잘 짜인 구획, 정비된 공원들, 아직은 다소 삭막한 아파트 단지들.

아침, 저녁 출퇴근하며 밀린 일들 하다 보면 금방 잊게 될 호주.


호주에서의 삶에서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내게 더 이상 큰 집이 필요하지 않다는 자각이다.

아이들도 이제 다 크고 얼추 독립할 때도 되었다 싶어 큰 아들은 자의로, 작은 아들은 타의 반으로 독립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서울 집을 팔고, 두 사람이 살 집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서울에는 1 room 구조의 아파트가 거의 없다.


호주에서 살아보니 1 room(방이 하나일 뿐 거실, 부엌, 화장실이 넉넉한) 아파트는 두 사람이 살아가기에 충분히 여유 있다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청소하고 관리하기에는 이것도 넓다.


서울 전역을 찾아봐도 강남, 왕십리, 남산, 종로, 연신내 등의 일부 단지에 극소수만 분포했다.


서울 일대에는 여전히 방 3개, 20~30평대 아파트가 주류다. 하지만 이곳 호주 캔버라에는 1, 2인을 위한 10평대 아파트가 많다.

(참고로 1인당 국민 소득에 비하면 호주 부동산 체감 가격은 한국의 절반 수준 정도로 보인다.)


조금만 나이가 더 들어도 가족이 단체로 모일 일이 거의 없고, 심지어 모일 일이 있다면 함께 모여 즐거이 식사하고, 놀 수 있는 특별한 곳을 원하기에 더 이상 큰 집이 필요 없다.


연중 단 며칠을 위해 많은 비용을 엉덩이에 깔고 있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냥 호텔에서 회식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오를지 말지를 고민하며 남은 인생을 빚 갚으며 사는 것보다는 짐을 줄이고 저축하며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럼 이제 갈 곳을 정해야 하는데...


부동산 시세, 통화 정책, 규제현황, 경매 등의 온갖 지표들을 봤다.


부동산 가치 양극화, 큰 환율 변동, 경기둔화에 따른 이자 부담 감소 추이에도 부동산 열기 억제를 위한 다수의 억제책, 경매 건수의 급증 기조, 지방 부동산의 몰락, 미분양 속출, 인구감소, 성장잠재력의 저하, 구매력 저하 등 최악의 거시지표 속에 있다는 것을 내가 아는 상식 모두를 총동원해 파악했다.


분명한 것은 무엇으로 봐도 값이 오를 요인은 없어 보이는데 호가는 줄곧 상승이라고들 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봤다.


서울로 이주한 5년 동안의 서식지를 살펴봤다.

서울 29개 행정구역, 지하철 노선 등.


서울지도, 지하철역 두 바퀴 정도를 돌면,

대략의 부동산 경향을 파악하고,

결국 내 인생은 뭘 원하는지를 묻게 된다.


도심 가까이, 지하철 가까이, 궁전이 내 정원처럼, 산이 가까우면 좋고, 병원, 약국은 적당히, 식당과 카페는 적당히 많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 도서관도 가깝고, 관공서는 적당히,...


몇 달에 걸쳐 우리의 다음 서식지를 정했다.


'우린 뭐, 큰 욕심 없이 재미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최우선이야.'


종로에 몇 안 되는 2인 거주용 아파트를 구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폼은 안나는 선택이다.

우리는 늘 그랬다.

유행과는 다소 먼

그렇다고 땅값이 떨어지지도 않고

웬만한 아파트 단지만큼의 비율로는 오르지만

경제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다하는

마치 채권(?) 같은 선택이다.

투자기간 동안의 인플레이션에 약간의 알파 정도를 거둬드린다.


욕심내서 안 하던 짓 말고,

북악산 자락 카페에서 경치구경하고, 책 읽으며,

고궁산책하고, 미술관 들러 아름다움을 탐닉하고,

재미 삼아 내 그림 긁적거려 보고,

광장시장 단골 가게에 들러 가자미 식해 조금 사다

아내랑 막걸리 한 잔 걸치며

한 주 한 주를 보내고

가끔 식구들 만나 즐겁게 시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좌충우돌 할 필요가 없었다.

원하는 것을 알고, 가진 것, 가지지 않은 것을 알면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늘 좀 더 갖고 싶어 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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