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다희 Nov 17. 2023

최대한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

최진영의 <구의 증명>을 읽고

어젯밤, 침대에 누워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을 읽기 시작했다. 


읽어야지, 언젠가 읽겠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소설이었는데, 얼마 전 학습관 자료실에 갔다가 '새로 들어온 도서' 코너에서 발견하고는 주저 없이 빌려왔다. 구의 증명이라... 여기서 '구'는 공처럼 둥글게 생긴 물체의 구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어떤 구역이나 구획을 상징하는 건가? 뒤에 붙은 '증명'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어감 때문에, 아마도 소설 내용은 냉철하고 단호한 분위기의 이야기 거라고 내 멋대로 상상하며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이야기 인가 싶었다. 구가 죽었고, 죽은 구를 먹었다니.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식인에 관한 괴기스러운 소설인가 싶었다. 반신반의하며 20페이지 정도 읽고 난 후, 그때부터는 읽던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 소설은 가난하고 외로운 구와 담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열 살 때 만난 이들은, 처음부터 구 옆에 담이가, 담이 곁엔 구가 서로의 몸과 마음 깊숙이 있었다. 태어날 때 받지 못한 사랑을 서로에게 갈구하듯, 서로 떨어지게 되어도 서로를 잊지 않는다. 담이를 보살펴 주는 어른이 왜 이모뿐인지, 구의 부모는 무책임하게 빚을 자식에게 대물림했는지, 그들의 불우한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그러한 상황에서 구와 담이 만났고, 친해졌고, 사랑하게 된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불행한 삶이 그렇듯이 그들의 사랑은 평탄치 않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p.165




소설을 읽으며 오랜만에 울었다.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이모가 죽고, 구가 죽고 홀로 남은 담이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천년, 만년 아주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는 담이의 고백이 증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원대로 오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홀로 남은 담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이 글을 끝내고, 그리고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내가 원하는 전부다. 

p.12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슬픈 사랑의 이야기 소설을 좋아하는 분

푹 빠져 단숨에 소설 한 권 읽어내고 싶은 분

여운이 깊게 남는 문장을 읽고 싶은 분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이 회색빛으로 보인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