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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성훈 Aug 07. 2022

반계리의 은행나무

어느 순간 글이란 것이 모조리 빠져나간 느낌이 든다. 애당초 그럴 것이 있었나 싶지만 (작가 직업 아닌 이상) 하늘이 무너질 큰일이 아님에도 섭섭함은 피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예술가를 폄하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마음의 균열이 없다면 그리고 그 균열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있지 않다면 좋은 글은 써지지 않는다. 삶을 후비는 작가의 문장은 그 균열이 만드는 작품이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내일의 루틴이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 굴곡지지 않다면, 제법 그럴듯한 균열을 만들어도 늘 같은 패턴의 스토리로 귀결되고 만다. 늘 같은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런 상태가 아닌가 싶다.


같은 일상의 반복, 평온하진 않더라고 평탄한 어제와 오늘 (아마도 내일). 그래서 어쩌다 글을 써 내려가도, 소재는 다를지언정 이전과 똑같은 결말 도달하고 또 질려버린다.



여름휴가, 반계리에 있는 600년 된 은행나무를 만나고 왔다. 아주 작은 마을에... 명소라기엔 (아니 명소여서일지 모르지만)  서너 대 주차할 공간과 아담하지만 제대로 된 공중화장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벌판, 그곳에 홀로 서있는 나무.


지나치게 덩치가 커져 여러 지팡이에 기대나무를 보고 있자니 갈래가 뻗은 가지는 600년 세월의 균열이오, 기둥 받쳐 버티는 무게는 균열의 깊이가 아닌가 감탄한다.


이게 베스트셀러의 힘일까?


여름, 허나 이를 찾은 이 나 혼자다.

푸르름과 장대함 만으로 사람을 불러드릴 힘이 부족하단 말인가?


무슨 말이냐면, 뻔하게도 이 나무 노랗게 물들어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가지의 균열은 그 뻔한 노랑의 본성 부각할 수 있어도 대신할 수 없다.


반계리의 은행나무를 본 순간, 내 비록 여길 다시 올  일이 없더라도 (근처에 맛집이라도 있다면 그 핑계로 들리겠지만), 가을이 오기라도 하면 분명 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나무의 노랑이 어떠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의 노랑은 무엇일까?

내 글이 뻔하더라도 '그냥 나'와 나의 이야기가 궁금 찾는 이 생기게 해야겠다 다짐한다.


근사한 균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더 농익고 가지를 뻗어갈 수 있도록 나를 더 단단히 뿌리내려야겠다. 내가 누구인지 더 들여다보고, 누구인지 자각하면서 말이다.


너무 뻔한 클리세라도, 그냥 내가 나이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노랑을 완성한다. 언어의 기교 따위는 그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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