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취업의 우여곡절

우연이 만든 기회, 붙잡은 필연

by 봄앤


석사 4학기.

오랜만의 등굣길.

교통사고 이후 처음 학교에 가는 가는 날이었다.

논문도, 취업도 시작해야 할 때 사고로 한 달을 결석했다. 몸 상태보다 늦어진 출발이 더 걱정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당장 달라지는 건 없는데도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평소 인사만 하고 지내는 후배 언니를 만났다.

“어머, 연수야. 사고 소식 들었어. 괜찮은 거야?”

“네, 크게 다친 건 아니라서요.”

“다행이다. 이제 마지막 학기지?”
“네. 언니는 3학기네요. 시간 진짜 빠르죠?”

“응. 넌 취업이야? 아님 박사과정이야?”

“취업하려고요. 누워 있는 사이 벌써 면접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벌써? 다들 빠르구나. 아, 너 혹시 조박사님 알아? 우리 연구실.”

“조진우 박사님요? 알죠.”
“박사님 후배 회사에서 사람 뽑는데, 이번 졸업생 추천 부탁하셨대..네 얘기해 줄까? 회사는 정확히 못 들었는데 컨설팅/마케팅… 리서치 계열이랬던 것 같아.”
“어디든 일단 넣어야죠. 제 얘기해 주세요 언니.”

“그럴게. 연락처 알려줄래? “

“감사해요, 언니.”

“나는 그냥 연락처만 전하는 건데 뭐… 들어보고 괜찮으면 잘해봐. 연수야.”

우연한 인사 한마디가 추천의 문을 열었고, 박사님을 통해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면접 날.
급한 마음에 서류부터 넣었는데, 알고 보니 1년 계약직 채용.

살짝 실망했지만 일단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회사에 도착하자, 처음 만난 부장님이 양해를 구했다.
상무님과 다른 부장들이 부재라며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달라”고.

회의실에 마주 앉자, 같은 대학원 석사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추천을 요청한 사람이 바로 그분이었다.


딱히 나눌 얘기가 없어서 그런지 부장님은 내 이력서의 구석구석을 짚었고, 나는 성의껏 답했다.

공식면접은 아니었지만 1차 면접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덕분에 긴장도 풀렸다.


이어서 실무 면접.
조금 전 그 부장님은 내 강점일 법한 지점을 다시 물어 주었다.

‘아까의 한 시간이 선물이 됐구나’—그렇게 느꼈다.


@Pixabay



첫 면접 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즈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네? 면접을 다시 봐야 한다고요?”
실무 1회로 끝난다던 채용이, 인사팀 문제 제기로 공고 재게시 → 지원자 재접수 → 실무–인사–대표이사의 공식 절차로 바뀌었다. 이력서도 회사 양식으로 다시.
그렇다면 첫 면접의 좋은 분위기는? 날아갔다.

처음부터 다시.


다시 본 실무 면접장엔 지원자가 많았다.
답변이 번쩍이는 사람도 있었다. 불안했다.
오전 내내 긴장했고, 오후에 건물 밖으로 나오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점심시간,

유리 빌딩 숲 사이로 겨울 햇빛이 눈이 부셨다.

사원증을 목에 건 말끔한 정장들의 물결이... 쏟아졌다

그 장면이 내게는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흘렀다.


‘저기, 저 무리 속에 나도…’


연강대 대학원을 갈망했던 그때처럼, 이번엔 여의도를 갈망했다.



그 회사를 포함해 몇 군데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특히 여의도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곳을 제외하고 모두 탈락.

그곳이 더 간절해졌다.


얼마 후, 지인을 통해 오프 더 레코드 소식을 들었다.

남자 내정자가 있고, 면접은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매서운 겨울 공기 속, 휴대폰 너머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났다.
여의도 직장인의 꿈은 물론, 어느 곳에서도 직장인이 되지 못할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됐으니까.


@Unsplash



어느 덧 졸업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취업한 동기들을 만날 생각에 자격지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며칠을 방황하다가 어렵게 마음을 다잡았다.

'잠시 휴학이라고 생각하자.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자. 쉼 없이 달려왔으니 잠깐 멈춰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프 더 레코드의 정보는 틀렸다.

‘내정자’따위는 없었다.

그 합격자는 나였다.


나는 여의도 직장인이 되었다.

내가 또 해냈다.


우여곡절이어도, 나는 내 길을 걷는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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