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기로
입사 후 첫 미션은 신입직원의 실무 오리엔테이션을 무사히 잘 끝내는 것이었다.
프로세스에 따라 각 부서에 파견되어 실무를 직접 보고, 손으로 배우고, 흐름을 이해하는 과정.
내가 속한 팀은 프로젝트를 총괄·매니징 하는 자리라 업무 전반을 다 알아야 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멘토에게서 디테일을 배우고, 지금까지 익힌 내용을 과제로 정리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오리엔테이션 종료.
그러면 실제 프로젝트 투입—진짜 내 일이 시작된다.
부서 파견은 생각보다 알바에 가까웠다. “이건 이렇게.” 짧은 브리핑 뒤에 어깨너머로 눈치껏 해내는 방식.
모두가 바빠 신입 교육은 늘 아웃 오브 안중.
사흘 동안 네 부서를 돌았다. 그럼에도 인수인계 문서는 0장.
모르는 일을 잘해보려고 전전긍긍하는 사이 하루가 휙 지나갔다.
그런데 배울수록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일이 내가 꿈꾸던 것과는 다르다는 확신.
물론 여기 오기까지 선택지는 없었다.
최종 합격이 이곳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이런 생각이라니—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딱 그 말 같았다.
여긴 분명 내가 바라던 여의도 회사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전공을 파며 막연히 그리던 워너비의 방향이 있었다.
그것이 꿈이라면 꿈.
이 회사는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결이 달랐다. 여기서 경력을 쌓을수록 오히려 멀어질 것 같은 예감.
‘여의도 직장인’이라는 간판만으로 워너비를 대체할 순 없었다.
결국 구직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당장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이 선택을 떠미는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면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닌 걸 알았다면 빨리 돌아가자. 다시 취준생이 되더라도, 그 길을 택하자.’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과정—멘토와의 시간.
“힘들진 않으셨어요?”
“조금 헤맸지만, 금방 적응됐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아니요. 설명을 너무 잘해 주셔서요.”
입 밖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속으론 ‘죄송합니다. 제가 찾던 회사가 아닌 것 같아서…’라는 문장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녀의 꿈이 궁금해졌다.
“대리님,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경영학과 마케팅. 학부는 미학이었어요. 회사는 공채로 먼저 들어왔고, 부서는 전공에 맞춰 택했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 채 왔어요. 그게 벌써 5년이네요.”
“와, 첫 직장이시죠? 5년이라니… 일이 잘 맞으셨나 봐요.”
“5년이 긴 시간 같죠? 꼭 그렇지도 않아요. 처음엔 다 그렇잖아요. 부딪히고 깨지고… 그러다 보니 5년이 흘렀어요. 저는 요즘 들어서야 제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좀 알 것 같아요. 알기 전까지는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고, 지금 묻는다면 다행히도 저한텐 잘 맞는 일이에요. 회사도 괜찮고요.”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그걸 깨닫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난 2주 만에 이 길이 아니라고 단정 지으려 했다고?’
입사 한 달도 안 된 내가 확신을 등에 업고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되는 걸까.
그 한마디는 내 성급함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날 이후,
나는 퇴사 대신 배움을 택했다.
겸허함으로.
하루라도 빨리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매진했고, 실무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덕분에 오랫동안 이력서 쓰는 일은 잊었다.
내게 맞는 일은 ‘알아가는 동안’엔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배운다.
내일은, 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