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회식의 정석(1)

술잔이 돌아도 정신은 고정

by 봄앤

내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

문제는 티가 안 난다는 거다. 얼굴도 안 빨개지고, 잠들지도 않는다. 위험 신호가 없으니 가끔 고삐가 풀려 주량을 넘기면, 다음 날은 변기를 붙잡거나, 하루 종일 울렁거린다.
그런데 이런 체질 덕분에 회사에선 술이 센 편으로 포지셔닝됐다.

어디서도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님에도,

주량은 직장생활에서는 꽤나 유용한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상사들은 종종 나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 술도 참 잘해요.”


회식은 업무라고 배웠다.

개인 약속보다 우선, 무조건 필참이 공식.

평일에 함부로 약속을 잡지 않고, 갑자기 잡히는 회식에도 대비한다.





자리는 늘 비슷하게 흘렀다.

거국적인 폭탄주 원샷으로 시작. 이후엔 각자 주종을 고른다—상사 대부분은 소주, 대리·과장은 맥주.

얼핏 선택의 자유가 있는 듯하지만, 상사 주종을 따라가는 편이 낫다. 각자의 주종으로 달리는 시간에는 상사들의 애정을 담은 소주잔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주종을 선택했다가 소주와 섞이면 다음 날은 지옥이 된다.

분위기가 처지면 파도타기, 누군가는 현란한 폭탄주 기술을 선보인다. 매번 신상 기술이 나온다.

대체 누가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지… 창의력은 부럽다.


하지만 이때 정신줄은 필수다.

상사의 술잔이 어디로 가는지 잘 지켜보라. 모두가 주목한 상태에서 전달되는 잔은 무조건 비우고, 즉시 답례로 채운다. 반대로 아무도 권하지 않았을 땐 굳이 들이키지 않는다. 권한 술만으로도 충분히 취한다.

주량이 애매하면, 옆에 큰 글라스나 그릇을 두고, 슬쩍 덜어가며 속도를 조절한다.

막내들은 많은 이들의 챙김을 받기 때문에 공식적인 1차 후, 2차·3차까지 꼭 찾히는 사람이라,

끝까지 살아남는 전략이 필요하다.


끝까지 버티면 부서 내 직원들과의 거리가 좁아진다. 속 얘기를 나눌 틈이 생기고,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기대기도 쉬워진다.

그것이 건전한 회식의 순기능이었다.



시끌벅적 1차가 끝나면, 누군가 섭외해 둔 노래방/주점으로 이동.

체면치레는 없다. 취기에 부끄러움이 사라진다. 윗분들은 18번(발라드)을 목청껏, 아랫사람들은 분위기 띄우는 곡으로 호응한다


나는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지만, 탬버린을 들고, 콧소리를 섞은 트로트를 부른다.

다 선배들에게서 배운 생존술이다.

정말 노래가 자신 없으면 조용히 구석에서 술로 분위기를 맞추고, 이름이 불리면 분위기 송을 신청하고, 한 소절 후, 가장 신나게 따라 부르며 춤추는 분께 마이크를 넘긴다. 그러면 모든 게 스무스.



@pexels-pixabay



아직 끝이 아니다.

3차.

최대한 이동이 짧고 조용한 곳. 이때부턴 유닛 단위로 나뉜다. 속 깊은 얘기가 오가고, 언성이 오르기도 하고, 통째로 사라지는 유닛도 있다. 마지막 유닛까지 사라지면 회식 종료.

애썼다, 우리.


회식은 부서만 있는 게 아니다.
클라이언트 회식은 난이도가 더 높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계속)


기억할 것.

술잔이 돈다고 내 정신까지 돌아서는 안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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