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내 평판

기대치의 저울

by 봄앤

어느덧 계약직 1년이 끝나 간다.

앞으로의 길은 세 가지.

정규 전환 / 계약 연장 / 종료(퇴사)


회사에서는 늘 일손이 모자라고, 법적으로 계약직은 2년까지 가능하니,

회사 입장에선 가성비 좋은 연장이 가장 현실적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늘 인사팀과 경영진의 몫. 조직 사정 한 줄이면, 부서의 의지는 쉽게 뒤집힌다.


부서는 우리가 계속 있을 거라는 듯 일을 맡겼지만, 우리는 묘하게 불안했다.
“튀지 말자. 무난하자. 성실로 채우자.”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혹시 한 번에 정규?’라는 아주 작은 확률의 희망도 품었다.



나와 동기는 겉모습만큼이나 결이 달랐다.

나는 차분/무난—그게 사람들에게 신뢰 이미지를 줬다. 연강대 석사 꼬리표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시작이 비교적 좋은 이미지였다.
그녀는 화려/뚜렷—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의 색이 강했다. 회식에서 “오늘은 술 안 먹겠습니다”를 또렷하게 말하는 타입.

놀란 건, 사람들이 그걸 버릇없음보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

가끔은 부러웠다.


업무도 달랐다.
나의 석사 2년이 헛되지 않았다. 논문 분석하듯 맥락→방법→결과로 처음부터 그럴싸한 산출물을 냈고, “신입인데도 고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서툴렀다. 선배 결과물에 최신 데이터만 얹는 수준. 그런데도 그쪽 부서는 신입이면 그럴 수 있다며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잘한다는 평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회의가 끝난 뒤, 대리님이 나를 불렀다.
“김사원, 요즘 사람들 박사원 얘기하는 거 알아요? 겪어보니 보기보다 사람 괜찮더라고 해요.

처음엔 이미지대로 봤대요—일 못 할 것 같고, 성격 세 보인다고. 근데 같이 해보니 큰 문제없이 어울리고, 일도 곧잘 한다는 거죠.”

대리님은 잠시 말을 고르고 핵심을 짚었다.

“핵심은 이거예요.

두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다는 것.

김사원은 석사고 이미지도 좋아서 잘하면 당연, 조금만 삐끗해도 감점.

박사원은 기대가 낮았어서 조금만 잘해도 가산점.

평가자가 그 기대치를 계산해 가며 보진 않아요.

억울해도… 그 기대를 맞춰야 하죠. 알아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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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을 나서자, 복도 바람이 차갑게 스친다.

생각지도 못한 논리에 억울했다.

나는 내가 더 잘해왔으니 당연히 더 좋은 평가일 거라 믿었다.


큰 착각이었다.

안일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성장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 확인했다.

원망할 수 없다.

기대치를 높여 둔 건, 결국 나였으니까.


함께 들어온, 비슷한 나이의 동기. 우리는 모든 것이 비교 대상이었다. 심지어 외모까지.
초반엔 그녀가 버벅이면 내가 템플릿을 건네고, 숫자를 맞춰 주고, 보고서의 문장을 다듬었다.


주제를 몰랐다.

평판의 저울은 낮은 기대엔 플러스, 높은 기대엔 마이너스로 기운다는 걸.

그날에서야 알았다.

내가 건넨 도움은 그녀의 ‘플러스가 되었고, 나는 ‘그 정도는 당연’의 기준만 더 올려 두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의지는 하되, 공(功)은 분명히 기록하고, 선은 지킨다.





사람들이 말하던 문장도 이해됐다.

사회에선 누구도 온전히 친구만으로 남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는 동기이자, 동시에 같은 트랙을 달리는 경쟁자다—둘 다 사실이다.


높은 기대 = 높은 기준선.(기본이 높아진다)

낮은 기대 = 체감 플러스.(작은 진전도 크게 보인다)

그러므로, 나의 평판 전략 = 일관성(들쭉날쭉 금지)


퇴근길이 무겁다.
그래도 생각을 달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높은 기대는, 누군가 내 가능성을 보았다는 증거.

그 가능성은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다.


그러니 오늘 내가 할 일은... 계속 흔들림 없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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